“고려대장경이 디지털 시대에도 문화적·지적 중요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을 관련 전문가 모두와 함께 찾아야 한다”고 말하는 루이스 랭커스터 미국 버클리대 명예교수.

"고려대장경은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완전한 목판(木版) 대장경이자 세계 불교학자들이 표준으로 삼는 불경입니다. 지난 1000년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1000년도 고려대장경이 인류의 문화·정신유산으로서 위치를 지속하려면 '초(超)학문적(transdisciplinary) 접근'이 필요합니다."

해인사 고려대장경의 학문적·문화재적 가치를 세계에 알리는 데 앞장서 온 루이스 랭커스터(80) 미국 버클리대 명예교수가 고려대장경 연구와 활용에 관련되는 모든 학문과 학자가 참여하는 팀을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랭커스터 교수는 3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2013 대장경세계문화축전 국제학술 심포지엄'의 주제발표를 통해 "고려대장경을 제대로 보존·연구·활용하기 위해서는 인문사회과학은 물론 자연과학·정보통신 기술의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랭커스터 교수는 초학문적 접근의 예로 고려대장경을 보관하는 판전(板殿)의 관리를 들었다. 700년 이상 된 판전과 경판의 보존을 위해서는 목재학·유동학(流動學)·화학·곤충학·균학(菌學)·토양비료학·고고학·건축학 등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고려대장경의 내용 연구를 위해서도 불교학·역사학·문헌학·철학·종교학·언어학·사회학·인류학 등 여러 인문사회과학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그는 "이제까지처럼 몇몇 학자가 협력하는 차원을 넘어서, 풀어야 할 과제를 분명하게 한 뒤 학문의 경계를 뛰어넘어 관련 전문가를 모두 끌어모아 팀을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랭커스터 교수는 1967년 버클리대에 불교학 교수로 부임해 대학에 소장된 고려대장경 인경본(印經本)의 분류·목록 작업을 맡으면서 고려대장경과 인연을 맺었다. 1970년 일본 교토대에 방문교수로 왔을 때 한국을 찾아 해인사 고려대장경을 처음 보고 깊은 인상을 받은 그는 1979년 고려대장경 영문 목록을 출간하고 전산화 작업에 착수했다. 그가 진행한 성과는 1993년 출범한 고려대장경연구소(소장 종림 스님)의 대장경 전산화 작업에 큰 도움이 됐다. 중국·티베트불교 전문가인 랭커스터 교수는 또 한국불교 전문가를 기르는 데도 힘써 박성배(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 로버트 버스웰(UCLA), 조은수(서울대), 조성택(고려대) 교수와 진월 스님(동국대 교수) 등 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최근에는 전산화된 고려대장경의 활용 방법 연구에 집중하고 있는 랭커스터 교수는 특히 급변하는 정보통신 기술환경에 고려대장경이 빨리 적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미 서구 박물관에서는 대화형 3D 기술을 이용하여 문화유산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사이버 전시관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고려대장경도 이런 기술을 도입하면 사람들이 판전 건물을 누비며 경판을 만져보고 인경도 하는 신기한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손안의 스마트 기기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 고려대장경을 친숙하게 전달하는 방법도 고민해야 합니다."

랭커스터 교수는 고려대장경의 초학문적 연구의 중심은 해인사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고려대장경 목판과 판전(板殿) 등 물적 자산과 디지털 기술을 보유한 해인사가 이 일에 앞장서면 동아시아 전통유산 보존·연구의 선구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