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산은금융지주와 산업은행, 정책금융공사를 산업은행으로 통합해 대내(對內) 정책금융 기능을 전담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정책금융기관 개편안을 내놨다. 2009년 10월 산업은행 민영화 작업에 따라 정책금융공사가 산업은행에서 분리되고, 산은금융지주가 설립된 지 4년 만에 원위치로 되돌려 놓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당초 산업은행 민영화 계획을 내놓으면서 낙후된 국내 금융 산업을 발전시키고 국내 기업들의 대규모 해외 플랜트 수주와 자원 개발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대형 투자은행이 시급하다고 했다. 투자 위험이 큰 벤처산업을 키우는 데도 모험 자본을 공급할 수 있는 투자은행이 필요하다는 논리도 폈다. 그러던 정부가 4년 만에 스스로 내놓았던 논리를 뒤집어버린 것이다.

정부는 이번 개편안에 대해 분산·중복된 정책금융 기능을 재편해 창업·벤처기업, 신성장 산업, 해외 플랜트 등 창조경제 지원에 정책금융 역량을 집중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실제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명박 정부 시절 분리했던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를 다시 합치겠다는 게 전부다. 그동안 업무 중복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 신용보증기금과 기술신용보증기금은 현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일부 기능을 조정하는 데 그쳤다. 정책금융 기능의 분산·중복에 따른 비효율을 해소하겠다면서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만 합치고, 다른 정책금융기관들은 업무가 겹치더라도 그대로 두겠다는 이유가 뭔지 알 수가 없다.

글로벌 금융 위기를 거치면서 고(高)수익만 추구하다 위기를 불러온 선진국 투자은행들의 문제가 드러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형 투자은행의 필요성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다른 대안도 제시하지 않고 과거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국내 제조업에선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뼈아픈 구조조정을 거친 후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면서 조선·전자·자동차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업들이 탄생했다. 그러나 한국 금융 산업은 168조원이 넘는 세금 지원까지 받아가며 구조조정을 했다고 하는데도 세계적인 은행 하나 나오지 못했다. 정부가 이런 식으로 아무 원칙도 기준도 없이 은행을 뗐다 붙였다 하고 있으니 우리 금융 산업이 삼류(三流)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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