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사관학교가 26일 생도들의 잇따른 일탈 행위를 막기 위한 대책으로 '육사 제도·문화 혁신 계획'을 발표했다. 금혼(禁婚)·금연(禁煙)·금주(禁酒)를 뜻하는 '3금(禁)' 제도를 강화하고, 이성 교제의 범위와 행동 지침을 명확히 하며, 여자 생도 전용 생활 공간을 마련한다는 게 골자다. 학과 성적 위주의 생도 선발 방식도 바꿔 내년부터는 정원의 20%를 적성 평가로만 뽑는 방안도 들어있다.

육사에선 지난 5월 축제 기간에 교정 잔디밭에서 폭탄주를 마시던 4학년 남자 생도가 술 취한 2학년 여자 생도를 자기 방으로 끌고 가 성폭행한 사건이 터졌다. 이달 초에는 태국 6·25전쟁 참전 용사촌에서 봉사 활동을 하던 3학년 생도 9명이 숙소를 무단 이탈해 술집과 마사지 업소를 출입하다 적발됐다. 지난주에는 4학년 생도가 채팅으로 만난 16세 여중생과 모텔에서 성매매를 한 뒤 사건 은폐를 위해 여중생의 스마트폰을 훔쳐 달아났다가 군 검찰에 구속됐다. 육사는 교내 성폭행 사건 직후 육사의 제도와 문화를 혁신하겠다며 대책팀을 출범시켰다. 그 대책팀이 한창 머리를 쥐어짜고 있던 그 시간에 다른 생도들은 마사지 업소를 드나들고 여중생과 성매매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 해 250명 안팎 배출되는 육사 졸업생은 대부분 일선 소대장을 거쳐 육군의 핵심 간부가 된다. 임관 때는 육군의 전체 임관 장교 중 육사 출신이 2~3%에 불과하지만 장성급은 80%를 육사 출신이 장악하고 있다. 우리나라 조직 가운데 이만큼 특정 학교 출신이 최상층부를 독점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국가가 세금으로 사관학교를 운영하는 이유도 젊고 유능한 생도들에게 선행(先行) 투자하는 것이 믿을 만한 안보 지도자를 길러내는 효율적 방안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만약 육사가 국가 안보를 맡길 만한 젊은 지도자들을 길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국민은 당장 세금 지원부터 끊으라고 요구할 것이다.

조직을 이끌어가는 훌륭한 지도자는 반드시 엄격한 규율과 통제를 통해서만 길러지는 것은 아니다. 육사가 '3금'을 강화하겠다고 하지만 '3금'의 모델이었던 미국 웨스트포인트를 포함해 이 제도를 고수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적성 평가로 생도를 뽑는다고 해서 그들이 일탈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군 당국은 사고만 터지면 임기응변 대책을 내놓을 게 아니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적절한 통제와 생도들의 자율 참여가 결합돼 실력과 도덕성을 갖춘 군 지도자들을 키워낼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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