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는 1986년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차종은 '엑셀'이었다. 우리에겐 자동차 수출국 대열에 오르는 징표로 뿌듯한 일이었지만, 한국산 차는 이내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미국 소비자들은 엑셀을 브랜드 대신 별명으로 불렀다. '일회용차', '붙어 있는 건 다 떨어지는 차'. 1998년 10월 30일 밤 11시, 미국 CBS 코미디 토크쇼 진행자인 데이비드 레터맨은 퀴즈를 냈다. "우주에서 장난칠 수 있는 것 10가지는 무엇일까?" 답 중 하나는 '우주선 계기판에 현대차 로고를 붙여라'였다. 우주비행사가 고장 잘 나는 현대차 로고를 보고 지구로 귀환하지 못할 수 있겠다고 깜짝 놀라게 만들 수 있다는 풀이였다.
수출 초기 때 회자되던 이 얘기는 우리에겐 수치였지만, 능력이 고작 그래서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더 절치부심했고, 2년 전 5월 말의 외신(外信)에 더 감격했는지 모른다. 2011년 5월 현대·기아차는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꿈의 시장점유율'이라는 10% 선을 돌파했다. 진출 25년 만에 벤츠, BMW, 도요타를 제치고 수입 자동차로 미국 내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에 온 국민이 환호했고, 정몽구 회장을 비롯한 현대차 임직원들의 품질 경영에 박수를 보냈다.
거기까지였다. 2년이 지난 지금 현대차에 대한 기대는 실망으로, 박수는 질타로 바뀌고 있다. 노조의 과도한 요구에 많은 국민이 '귀족 노조의 탐욕(貪慾)'이라며 혀를 찬다. 현대차 직원의 1인당 연봉은 평균 9400만원(2012년)으로 1억원에 가깝다. 삼성전자의 평균 연봉은 7000만원이고, 포스코의 연봉은 6080만원이다. 그런데도 올해 노조는 기본급(13만원) 인상 외에 정년 61세로 연장, 작년 순이익의 30% 지급, 상여금 800% 추가 지급, 대학 못 간 자녀에게 1000만원 기술 지원금 등 무려 180가지 세부 임금협상안을 제시했다. 사측은 '한 사람당 1억원가량이 더 들어간다'며 황당해한다.
실망은 우려로, 우려는 불안한 현실로 나타났다. 현대차는 국내에서 수입차에 밀려 점유율이 뚝뚝 떨어지고 있고, 미국 시장점유율도 2년 전 10% 돌파에서 8%대로 되밀린 상태다. 유럽에서도 마이너스 성장세다. 차 한 대 만드는 시간(30.5시간)이 미국 자동차 회사들(15.4시간)보다도 길고, 과도한 인건비 비중(매출의 13%)은 투자 여력을 잠식하고 있다. 1등 도요타만 해도 인건비 비중이 10%가 채 안 된다.
실망, 분노의 끝에 소비자들이 눈을 부릅뜨고 서 있다. '현대차 안 사고, 수입차 산다'는 이가 부쩍 늘고 있는데, 이유를 들어보면 납득이 간다. "현대차 귀족 노조 배불려 주는 바보 같은 짓은 이제 그만하겠다" "나보다 연봉 더 많이 받는 현대차 노조원들에게 분노를 느낀다"…. 머지않아 현대차 불매운동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현대차는 글로벌 5위인데, 현대차 임직원, 노조원들만의 노력, 공(功) 때문이라고는 스스로도 얘기 못 할 것이다. 국산 차이기에 해외보다 비싸도 두말 않고 사주고, 서비스가 형편없어도 불평 않고 몰아주고, 잦은 파업으로 납기를 못 맞춰도 부지하세월 참아주고, 경쟁력을 이유로 단가를 후려쳐도 악전고투하며 버텨 준 협력업체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의 현대차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우리도 안 사겠다는 차를 다른 나라 소비자들에게 '사달라'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국내 기반이 무너지면 바깥에서 찬밥 신세 되기는 시간문제다. '기분 나빠서 현대차 안 타겠다'는 국내 소비자들의 마음을 되돌리지 않으면 10년 후 현대차는 지금의 현대차와는 전혀 다른 회사로 남게 될 것이다. 나라와 회사에 모두 비극이다.
입력 2013.08.2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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