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북한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영화 ‘한 여학생의 일기’의 여주인공을 맡았던 북한의 유명 신인 여배우 박미향이 화폐개혁 당시 숙청당한 박남기 전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의 친척이라는 이유로 연좌제 처벌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미국의 자유아시아 방송이 17일 보도했다.

지난 2006년 북한에서 개봉된 ‘한 녀학생의 일기(감독 장인학)’는 1시간 34분 분량으로 신세대 북한 여고생이 과학 연구에 헌신하는 아버지와 그를 내조하는 어머니와 갈등을 빚다가 부모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북한 대외선전용 주간지 통일신보 홈페이지 캡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대본 작성과 촬영 등을 직접 지도한 것으로 전해진 이 영화는 김정일이 “모든 주민이 다 보게 하라”라고 지시하면서 북한 주민 800만명이 관람하는 등 당시 북한에서 최고 인기를 누렸고, 박미향도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또 이 영화는 지난 2007년 5월 칸 국제영화제 필름 마켓에서 시사회를 통해 처음 소개돼 사실상 서구에 처음으로 선보인 북한의 상업영화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북한당국이 돌연 이 영화를 보지 말라고 지시를 내린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RFA에 따르면 중국에 친척 방문차 나온 한 북한 주민은 “당국이 ‘한 여학생의 일기’를 보지 말라고 지시하고, 이 영화를 녹화한 DVD까지 전부 없애라고 지시했다”면서 “이유는 영화의 주인공이 화폐개혁 때 처형된 박남기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의 친척이기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수련 역을 맡은 박미향은 당시 영화연극대학에 재학 중인 대학생이었으며, 얼굴이 예쁘고 연기를 잘해서 관객들의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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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대외선전용 주간지인 통일신보에 따르면 박미향은 11살 때 영화 '어제, 오늘 그리고 래일'로 데뷔해 '새로 온 지배인' '높이 날으는새' '서리꽃' 등 영화와 '국경관문' 등 TV연속극에 출연했다.

이 북한 주민은 “배우 박미향은 원래 외무성 간부의 딸로 알려졌으며, 그의 가족은 외국에도 여러 번 다녀오고, 오빠도 외국어대학에 다니는 등 괜찮게 살던 집안이었다”면서 “하지만, 2010년쯤 북한 당국이 이 영화를 보지 말라고 지시하는 동시에 박미향도 영화무대에서 사라졌다면서 박남기 부장의 숙청과 함께 연좌제 처벌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북한 내 대표적인 ‘계획경제파’인 박남기는 1986년 12월 인민경제를 총괄하는 국가계획위원장에 발탁된 이후 24년간 북한 계획경제를 최일선에서 지휘하는 등 김정일의 핵심 측근이었다. 하지만 2009년 11월 화폐개혁 이후 북한 주민의 불만이 폭발하자 박남기는 ‘장기간 암약한 남조선 간첩’으로 몰려 2010년 3월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소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부하인 리태일 계획재정부 부부장과 함께 강건군관학교에서 총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북한 내부에서 상영이 금지된 이 영화는 해외에서는 여전히 상영되고 있다고 RFA는 보도했다.

북한은 지난해 중국 옌볜에서 열린 ‘북한(조선)영화상영주간’ 때 ‘한 여학생의 일기’를 비롯해 영화 5편을 무료로 돌렸고, 해외 동영상 웹사이트 유튜브에도 이 영화를 올려놓고 있다.

평양 출신 탈북자는 “북한에서 영화배우가 숙청되면 그가 출연한 영화까지도 모두 없애는데 박미향은 연좌제로 불이익을 받았기 때문에 앞으로 영화를 다시 돌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고 RFA는 전했다.

과거 영화배우 자체가 숙청된 경우는 다르다는 것이다.

북한은 1970년대 말 영화 ‘목란꽃’의 주인공 우인희씨가 공개 처형되자, 그가 주인공으로 출연했던 영화를 다 없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