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중 의학전문기자

최근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올라온 응급실 의사 폭행 장면을 보면 기가 막힌다. 경기도 모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일어난 일이다. 50대 남자 환자가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술에 취해 있었다고 한다. 그 환자가 응급실에 먼저 왔지만, 응급의학과 의사는 소아 환자 진료가 급하다고 보고 아이를 먼저 봤다. 응급실 진료는 선착순이 아니다. 응급 상황 정도에 따라 우선순위가 바뀌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그 남자 환자는 소아 진료가 끝나자마자 "왜 나부터 진료를 안 했느냐"며 응급의학과 의사 얼굴에 철제 의자를 집어던졌다. 그러고는 마구잡이로 의사를 폭행했다. 응급실은 아수라장이 됐고, 의사는 피를 흘리며 자리를 피했다. 이 장면은 그대로 CCTV에 잡혔다. 나중에 의사는 머리의 상처를 바늘로 꿰매야 했다.

응급 의료인에 대한 폭행 사건은 야간에 빈번히 발생한다. 며칠 전에는 서울의 한 공립 병원에서 술에 취한 대학생이 응급실 당직 여의사를 폭행하는 사건이 있었다. 새벽까지 술을 마시다가 얼굴에 상처를 입은 그 대학생은 소독 치료를 하던 여의사의 솜과 핀셋을 빼앗아 던지고, 배를 걷어차는 난동을 피웠다. 이달 초에는 부산 해운대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환자 보호자가 "검사는 다 필요 없고 주사나 놔주라"며 소리를 지르고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만약 그 난장판의 응급실에 분초가 급한 심근경색증 같은 응급 환자가 왔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그럼에도 응급실 폭력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환자가 약자라는 이유로 대개 미지근한 반응을 보인다. "환자가 오죽하면 그랬겠느냐"고 보는 온정주의 시각도 있다. 의료진이 폭행 가해자를 고소해도 '환자 서비스'를 내세우는 병원은 적당히 합의를 보도록 종용하기도 한다. 지난해부터 응급실 폭력 등에 대해서는 응급 의료에 관한 법률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릴 수 있게 돼 있다. 그렇지만 실제로 이 법대로 처벌된 사례는 매우 드물다.

그러니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촌각을 다투는 응급실에서 버젓이 폭력이 발생한다. 응급실은 가뜩이나 근무 환경이 열악한 곳인데, 그런 험한 꼴을 한번 당하면 의사들은 응급실을 떠난다. 간호사들의 이직률이 가장 높은 곳도 응급실이다. 숙련된 의료인이 응급실을 비우면 누가 피해를 보겠는가.

선진국에서는 응급실 폭력을 준(準)살인 행위라는 중대 범죄로 취급한다. 응급실에 온 중환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미국에서는 의료인에 대한 폭력은 2급 폭행죄로 분류된다. 이는 최고 징역 7년형을 받을 수 있는 중대 범죄다. 처벌 범주에는 의료인뿐만 아니라 의료 기사와 수련 중인 병원 직원에 대한 폭행도 포함된다. 응급실, 진료실, 장기 요양 시설, 보건소 등 거의 모든 의료 기관에서 이뤄지는 폭력은 엄벌한다. 워싱턴·애리조나·콜로라도 주(州) 등은 의료인 폭행을 특정범죄로 가중 처벌하며, D급 중범죄인 흉악 범죄로 다루는 곳도 있다. 싱가포르에서는 아예 종합병원 응급실에 경찰 초소를 두어 폭력 사태를 미연에 방지한다.

이제 응급 의료인에 대한 폭력은 최소한 버스 운전기사나 공무 집행 중인 경찰관에 대한 폭행에 준해 강력히 다스려야 한다. 의료인이 예뻐서 이러는 게 아니다. 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