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 갈 길이 멀어요. 애들이 더 어렸을 땐 '아이 키우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힘들다'고 생각했지요."

유력한 노벨 과학상 후보, 유럽분자생물학기구(EMBO) 한국인 첫 회원, '로레알―유네스코 여성과학자상' 수상자, 기초과학연구원(IBS) 첫 RNA연구단장….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붙는 서울대 생명과학부 김빛내리(44) 교수의 고민치고는 소박해보였다. "공부는 늘 하던 일이니 어렵지 않지만, 자식 키우는 건 새로운 도전이더라고요."

김 교수는 마이크로 리보핵산(RNA) 분야의 1인자다. 마이크로 RNA는 세포 안에 존재하는 띠 모양의 염기 사슬로 세포 내에서 다양한 유전자를 조절해 세포 분화와 성장, 죽음에 관여한다. 그는 이 마이크로 RNA가 어떻게 생겨나는지 밝혀 세계적인 과학자 반열에 올랐다. 최근에는 줄기세포 분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마이크로 RNA인 '렛 세븐(let-7)'의 생성 과정에서 '텃(TUT)'이라는 단백질의 역할을 밝혀냈다. 줄기세포가 유지되도록 돕는 텃 단백질을 조작하는 등의 방법으로 관련 연구에 활용될 전망이다.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김빛내리 교수는“앞으로 나조차 상상하지 못한 걸 발견하는 연구를 하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이러한 성취로 김 교수는 올해 상반기에만 '대한민국 최고 과학기술인상'과 에쓰오일 과학문화재단의 '올해의 선도 과학자 펠로십' 수상자로 선정됐다. "상 복이 터졌다"고 하자 그는 손사래를 치며 "올해만 두 번째라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라고 했다. '노벨 과학상 후보'라는 말은 더더욱 부담스러워했다. "지금까지의 연구로는 어림없죠. 배우는 게 좋아서 시작한 일이니 그저 연구에만 집중하고 싶어요."

초등학교 시절 다리 관절에 문제가 생겨 1년 정도 학교를 쉬었다는 김 교수는, 집에서 책 읽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교사였던 부모 영향도 컸다. "어려서부터 책 읽는 어머니를 보며 자랐어요. 평생 배울 수 있으면서 경제적인 도움도 될 수 있는 직업을 찾다 보니 과학자가 된 건데 결과적으로 좋은 결정을 한 것 같아요."

물론 연구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연구비에 쪼들려 수억원의 시약 대금을 지급하지 못한 적도 있고, 어린 자녀들을 떼놓고 나오는 것도 마음 아팠다. "초등학교 4학년인 둘째는 작년만 해도 '친구 엄마는 집에 있는데 왜 엄마는 자꾸 나가냐'며 떼를 썼어요." 자녀들도 김 교수처럼 과학에 관심이 많을까? "딸은 생물 교과서도 보지 못할 정도로 물컹물컹한 생물을 보면 기겁을 해요. 자식이 나랑 비슷하기를 기대하는 게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죠. 자식은 독립된 인격체라는 말을 왜 하는지 알 것 같아요."

그는 '엄마나 아빠처럼 돼야 한다'는 압박을 주기 싫어서 자녀들에게 자기에 관한 신문기사를 보여주지 않는다고 했다. "제가 초등학교 때 쓴 학급신문을 보니 장래 희망에 '현모양처'라고 써놨더라고요. 아이들 꿈은 수시로 바뀌잖아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는 물음 자체가 스트레스인 거죠. 그래서 저희 딸은 특정 직업이 아닌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을 꿈으로 정했어요."

과학자로서의 명성을 쌓아가던 지난해 7월, 김 교수는 몰레큘러 셀에 게재한 논문을 자진 철회했다. 이례적인 일이지만 그는 덤덤했다. "학문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가설에 기반해 연구를 했는데 다음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그 가설이 잘못됐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다음 연구자들에게 혼동을 주고 싶지 않아 논문을 철회했죠. 길게 고민하지 않았어요."

과학자의 삶, 포기하고 싶을 땐 없었을까? 김 교수가 고개를 저었다. "긍정적인 성격이 제 천성인가 봐요(웃음). 연구를 하다 보면 10번 중 9번은 실패하지만 그 실패의 과정에서 배우는 게 있거든요. 실패의 과정에서 좌절하지 않고 뭔가 배웠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