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봄 공연한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에 이런 대사가 있다. "그때 난 어려서 아무것도 몰랐어요." 이 대사를 하다 배우 조강현(28)은 대성통곡했다. "투병 중이신 아버지 생각이 났다. 여행이라도 한번 모시고 갈걸…."

부친 조준기씨는 지난 4월 암으로 별세했다. '독도 2호 주민'이 세상을 떠났다고 기사가 떴다. 외할아버지 최종덕(1987년 작고)씨가 독도 1호 주민. 조강현은 독도 3호 주민이자 독도가 고향인 최초의 한국인이다. 아버지 조씨는 경운기 엔진으로 자가발전을 해야 겨우 전기가 나오는 독도에서 "우리가 여기 살아야 우리 땅이 된다"며 8년을 버텼다. 뭍으로 이주해 노래방을 할 때는 '독도 노래방', 음식점을 할 때는 '독도 돌솥밥'으로 이름 지었다. 식당 4면이 온통 독도 사진이었다.

지난 23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뮤지컬‘해를 품은 달’무대에선 배우 조강현.

아버지의 가슴에 독도보다 더 우뚝했던 섬이 아들 조강현이었다. 섬에서 태어나 강원도 산골에서 자란 소년은 열아홉에 처음 서울 땅을 밟았다. "올림픽대교를 건너는 데 입이 절로 벌어졌다. 이게 말로만 듣던 미래 세계구나!"

2004년 동국대 연극영화과 2학년 때 부친에게서 전화가 왔다. "군대 갈 때 안 됐느냐? 부쳐줄 학비가 없구나." 아들은 가장 빨리 입대할 수 있는 해병대에 자원했다. 군인 월급 4만~5만원이던 때, 이라크 파병부대에 자원하면 200만원이라고 해서 옳다거니 싶었다. 6개월간 50m 근처에서 포탄이 터지는 걸 보며 근무했다. 제대해서는 새벽마다 신문과 우유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다. 2008년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앙상블 오디션에 합격했다.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뮤지컬 '김종욱 찾기!' 할 때만 해도 월세 10만원짜리 방을 찾아 부동산을 전전했다.

코미디에서 사극까지, 조강현은 웃길 때도 울릴 때도 순도(純度) 100%다. 뮤지컬 '해를 품은 달'에는 세자 훤에 밀리고 눌리는 서자 양명으로 나온다. "하나쯤 제 것이 되면 안 되는 것인가요?"라고 울분을 토하던 그가 "원하는 건 종묘사직의 제주(祭主) 자리와 허연우뿐!"이라며 칼을 뽑을 때 작품의 비등점이 최고조에 달한다.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마음에 관객도 공감하는 것 같습니다."

'유일한 독도 소년'은 내달 일본을 '공략'하러 간다. 한국 창작 뮤지컬을 올리는 도쿄 롯폰기 아뮤즈뮤지컬씨어터에서 '형제는 용감했다' 무대에 선다. "저는 얼굴에 '꽃'도 없고, 몸에 근육도 없고, 있는 거라곤 진심뿐이죠. 일본 관객의 마음도 진심으로 흔들어보겠습니다."

▷뮤지컬 '해를 품은 달,' 31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1588-5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