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하고 깐깐한 정수기 물(역삼투압 방식)은 사실 '미네랄'이 없고 혈액을 산성화시킨다는 '물박사' 성익환(62)씨의 인터뷰가 나간 뒤, 사람들은 이렇게 물었다.

"그러면 그는 어떤 물을 마시는가?"

다시 그를 만났을 때 나도 똑같이 물었다.

―'물박사'는 어떤 물을 마시고 있나?

"대덕연구단지 안에 있는 동네 우물의 지하 암반수를 20년 이상 마시고 있다. 단지조성 당시 비상용수를 위해 뚫은 지하공을 우물로 만든 것이다"

―수돗물은 마시지 않는가?

"생활용수로 쓴다."

―그런 지하 우물이 주변에 없는 도시인들의 선택은?

"하루에 마시는 물 2L는 수돗물 정책의 신뢰 유무를 떠나, 자기 건강과 기호 및 치료 등 목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옳다. 우리 몸은 물을 통해 천연 미네랄을 섭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국의 일부 학교에서는 천연 미네랄 워터를 음용수로 쓴다. 프랑스 유치원에서는 수시로 교육을 통해 미네랄 워터를 먹는 습관을 길러준다."

―수돗물은 마실 수 없다는 뜻인가?

"수돗물을 마실 수 있다는 신뢰를 주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다. 정수장에서 만든 수돗물은 먹는 물 수질 기준에 적합하다. 다만 송수관, 옥내 배관 및 옥상 물탱크 등으로 인해 찜찜한 게 현실이다."

―국가가 현재 책임을 다 못하고 있다고 보는가?

"수돗물 음용률이 2% 수준이면 책임을 다 못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수돗물을 끓여 마시는 가정이 많다. 이런 선택은?

"차를 마시거나 조리 목적, 특별한 치료 를 위한 경우가 아니면 끓여 마시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물을 끓이면 물속에 들어 있는 미네랄의 일부가 손실된다."

―수도요금을 내고서, 결국 마시는 물은 돈을 내고 따로 사 먹으라는 뜻으로 들린다.

"수돗물에 관한 한 빈부 격차 없이 누구나 안심하고 마실 수 있도록 해주는 게 국가의 책무다. 자기 취향과 건강에 맞는 물을 고르는 것은 선택 사항이다. 나는 출장 중에는 먹는 샘물을 사 마신다."

―국내 시판 중인 먹는 샘물은 그런 '미네랄' 요구를 충족해주는가?

"현재 시판 중인 샘물은 경도(미네랄 함량)가 200mg/L 넘는 제품이 없다. 시중에서 가장 잘 팔리는 A사 제품의 경도는 60쯤 된다."

―우리가 사 먹는 샘물도 미네랄 함량이 낮다는 것인가?

"1995년 '먹는 물 관리법'이 만들어질 때, 먹는 샘물의 경도 기준을 수돗물에 맞춰 300 이하로 정했다. 샘물 업체는 '불합격'을 받지 않기 위해 아예 미네랄 함량을 낮췄다."

성익환 박사는 "수돗물에 관한 한 빈부 격차 없이 누구나 안심하고 마실 수 있게 해주는 게 국가의 책무"라고 말했다.

―왜 그런 300 기준이 생겼나?

"과거 수도관은 아연 도금을 했다. 물의 경도가 높으면 관내에서 부식을 더 잘 일으킨다. 그래서 300 이하로 정했다. 수도관을 보호하기 위한 기준이었다."

―먹는 샘물은 수도관과 상관없지 않은가?

"그래서 코미디다. 수돗물 기준을 먹는 샘물에 적용한 것은 우리나라뿐이다."

―왜 그렇게 됐나?

"수도 사업자들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다. 내가 지질자원연구원에 근무할 때 이 점을 지적했다. 몇 년 전 경도를 500으로 상향 조정했고, 올해 1000까지 올렸다. 선진국에서는 먹는 샘물의 경도에 제한이 없다. EU, 미국, 영국 등은 수돗물조차 경도 기준이 없다. WHO(세계보건기구)에서도 수돗물 경도 기준을 폐지했다."

―먹는 샘물의 경도 기준을 높인 뒤로도 왜 고(高)미네랄 워터가 생산되지 않나?

"샘물 공장들은 당초 수돗물 기준에 맞추기 위해 지질학적으로 미네랄 함량이 낮은 지역에 지어졌다. 대부분 영세 업체이다. 이미 시설 투자가 이뤄진 상태라 다른 곳으로 옮기기 어려웠을 것이다."

국내 먹는 샘물의 시초는 1970년대 중반 '다이아몬드 생수'다. 당시 관련 법이 없었고 '생수'라는 이름으로 판매됐다. 1984년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가 '수도법'으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주한 외국인 대상 판매와 수출용으로만 한정했다. 내국인 판매는 불법으로 막았다. 계층 간 위화감을 조성하고 수돗물의 권위가 무너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낙동강 페놀 사건(1991년) 이후 수돗물에 대한 불신으로 불법 생수 공장이 전국적으로 500여개 생겨났다.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95년 '먹는 물 관리법'이 만들어졌다.

"현재 샘물 공장은 62개가 있다.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뀌면서 억제된 셈이다. 프랑스에서 200년간 37개를 허가한 것과 비교된다. 무분별한 취수로 전국에 방치·폐공된 시추공만 200여만 개다. 이를 시멘트로 되메울 경우 오염을 유발하거나 빗물이 스며들 구멍을 막게 된다."

―지하수의 소유 개념은 어떻게 되어 있나?

"우리나라에서는 오직 지표수만 공수(公水)다. 지하수는 토지 소유권자의 소유로 돼 있다. 지하수가 먹는 물로서 공적인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지하수는 농업용수, 대체용수 및 비상용수로만 인식되고 있다."

―먹는 샘물은 그렇지만, 해양 심층수는 미네랄이 풍부하다고 들었다.

"바닷물엔 많은 미네랄(8만~10만mg/L)이 포함돼 있다. 미네랄 워터를 찾는 국민의 요구에 직면하면서, 6년 전 경도 기준을 1200까지 높여 해양 심층수 제조를 허가했다."

―시판 중인 해양 심층수 제품의 평균 경도는?

"예상과 완전 딴판일 것이다. 50~150쯤 된다."

―해양 심층수는 원수(原水) 자체부터 미네랄 덩어리가 아닌가?

"바닷물은 그렇다. 하지만 제조 공정에서 염분과 중금속을 제거하는 '역삼투압 정수' 및 전기분해 처리 과정을 거쳐 일단 미네랄이 없는 원수를 만든다. 이 과정에서 당초 알칼리수가 산성수로 변한다. 그런 뒤 걸러진 미네랄을 다시 첨가해 경도를 맞춘다."

―왜 경도 1200 수준의 해양 심층수 제품은 시중에 나오지 않는가?

"낮은 미네랄 샘물 맛에 길들여진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추느라 그렇게 했을 것이다. 시판 중인 해양심층수는 '산성수'이며, 천연미네랄 워터로 볼 수가 없다는 점이다."

―선진국의 해양 심층수는 어떤가?

"해양 심층수로 먹는 물을 만들어 파는 나라는 유럽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일본과 우리나라 정도다."

36도의 폭염이 덮치던 날, 나는 대구로 내려갔다. 그는 대구의 23개 근린공원에 150여미터 깊이의 '동네 우물'을 만들어 놓았다. 우리가 하루에 마시는 '건강한' 물 2L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그의 실험 현장이었다. 나는 두 곳에 찾아가 물맛을 봤다. 경도 400이 넘는 지하수는 설악산 오색약수의 혀끝 감촉처럼 비릿한 쇠 맛이 났다.

"이 우물물의 수질은 에비앙보다 더 낫다. 동네 주민들은 공짜로 최고의 천연 암반수를 마시고 있는 것이다."

'동네 우물'이라는 표현을 썼을 뿐 수도꼭지가 달려 있다. 지하수의 수위·수온·수량 정보와 수질 분석 결과 등을 보여주는 터치스크린도 설치돼 있었다. 3년 전 국비 70억원(환경부 30억원, 대구시 40억원)을 지원받아 착수했다고 한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 직속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자문위원을 했다. 여기서 물 통합 관리 방안을 4년간 논의했지만 부처 간 영역과 권한 다툼으로 결국 무산됐다. 대통령께 마지막으로 보고하는 국정 회의에서 내가 '지표수 사업비는 10조원이다. 하지만 국토부(수량 관리)와 환경부(수질 관리)가 서로 중복 투자해 4조가 샌다. 수돗물 공급량은 독일의 두 배, 일본의 1.5배이지만, 신뢰도는 1%도 안 된다. 그런데 이런 수돗물조차 혜택을 못 받는 사람이 500만명쯤 된다. 시골의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이 쓰는 간이 상수도에는 정부 지원이 한 푼도 없다'고 단독 발언을 했다. 노 대통령은 '성 박사 말을 들으니 눈물이 다 난다. 경제수석, 기획예산처 차관, 다 들었지요. 지원해주시오'라고 지시했다. 간이 상수도 시설 개선비 1조2000억원이 편성돼 지자체로 내려갔다. 동네 우물 사업은 그 예산에서 나왔다."

―그전에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이 있었나?

"이분이 안정적인 선거 자금을 마련하려고 충북 옥천의 샘물 회사 '장수천'을 인수했다. 2000년 환경영향평가를 받을 때 내가 '인근 하천수가 샘물 원수에 유입될 수 있다'며 부적합 의견을 제시하자, 두 번이나 직접 내게 전화했다."

―어떤 내용의 통화였나?

"이분이 '성 박사' 내가 큰일을 하려는데 도와달라'고 했다. 나는 '큰일을 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당시 참모였던 안희정씨가 이 문제로 찾아온 적도 있었다."

―그 뒤 장수천 허가는 어떻게 이뤄졌나?

"하천수 유입을 차단하는 방수막 공사를 한 뒤 지방 환경청에서 허가해줬다. 하지만 2001년 수질이 악화돼 판매부진으로 문을 닫게 되었다."

―동네 우물 사업을 대구에서 시작한 이유는?

"지질학적으로 대구는 경상계 퇴적암층이다. 이런 지질층은 경북 봉화에서 경남 진주까지 분포돼 있다. 고인 지하수에는 미네랄이 많다. 에비앙은 전 세계에서 1초당 25병이 팔린다. 이런 천연 암반수 개발은 세계 물 시장 진출을 위한 전초 사업도 될 것이다."

-이런 우물을 하나 만드는 데 얼마나 비용이 드나?

"우물 한 곳당 3억원 들었다. 외부 오염원을 완벽히 차단했고, 첨단 전자 기술로 지하수 상태를 실시간 계측할 수 있게 했다. 당초 대구시는 250개를 만들기로 했다. 현재 23개로 중단됐다. 여러 가지 이해관계가 작용했을 것이다."

―이런 지하수를 공짜로 주면 수도 사업자나 정수기 업체, 샘물 업체 어느 쪽도 불만이지 않겠는가?

"역설적이지만 이 우물물 관리는 대구수도사업본부에서 하고 있다. 내가 외국 귀빈들을 모시고 현장 방문을 할 때마다 터치스크린이 작동되지 않았다. 기득권자들은 이 우물에 대해 불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양질의 물을 위해 경쟁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에게 마시는 물을 해결해주는 길이다."

※ 성익환 박사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 물 분야에만 34년 근무, 작년 말 정년 퇴임. 프랑스 오를레앙대학에서 석·박사. 한국지하수토양환경학회 회장, 국무총리수질개선기획단 자문위원, 대통령 직속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자문위원 등 역임.

→ 미네랄(Mineral)
칼슘·마그네슘 같은 광물질(무기질)을 말한다. 인체에 꼭 필요한 5대 영양소 중 하나다. 체내에서 합성되지 않아 물과 음식을 통해 섭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