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선 11일 "박근혜 정권의 이명박 전 정권에 대한 차별화가 정점(頂點)에 이른 것 같다"는 얘기가 나왔다. 전날 검찰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구속하고, 감사원은 4대강 사업 감사 결과를 발표한 데 대한 반응이었다. 직전 정권에 상당한 타격을 준 두 장면이 하루에 오버랩된 것이다.

◇MB정권과 잇단 선 긋기

박 대통령은 최근 국정원 댓글 사건, 원전 비리 등에 대해 '과거 정권에서 벌어진 일'이라며 새 정부와는 선을 그어왔다. 또 10일 발표된 4대강 감사 결과에 대해선 이정현 홍보수석을 통해 "사실이라면 국민을 속인 것"이란 입장을 내놨다.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불구속 기소됐던 원 전 원장은 10일 밤 개인 비리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어쨌든 MB정권과 단절할 시점이 온 것 같다"며 "전 정권의 비리와 오류를 떠안고 가기엔 부담이 너무 크다"고 했다.

MB정권과 차별화는 지난 대선 때 선거 전략의 하나로 캠프 일각에서 논의됐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채택하지 않았다. 유세 과정에서 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실패한 정권의 후계자"라고 몰아붙이면서 "이명박 정부도 민생 실패에 책임이 있다"고 말한 게 거의 전부였다. 당시 대선 캠프의 관계자는 "MB정권과 결별을 얘기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범(汎)보수 진영 통합이 우선이었다"고 했다. 4대강 사업에 대해서도 가급적 말을 아꼈다. 당선인 시절에도 대통령직인수위에 "수질개선 사업에 예산 낭비와 국민적 의혹이 없도록 점검하라"고 지시한 정도였다.

새 정부 출범 이후에는 박 대통령은 주로 정부 시스템 정비에 집중했다. 조각(組閣)과 공공기관장 인사에서 MB정권 색채가 있는 이들이 거의 배제된 게 차별화라면 차별화였다. 이 때문에 이명박 정부에서 일했던 일부 인사들은 "어찌 됐든 정권 재창출이 이뤄졌고, 이 전 대통령이 박 대통령 당선에 물밑에서 기여한 게 사실인데 너무 우리를 배제하려는 것 아니냐"는 불만을 표시해왔다. 이런 가운데 '이명박 정권'과 관련된 사건들이 잇따라 터졌고, 청와대 관계자는 "새 정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고 했다.

◇靑, "정치 보복이 아닌 정상화 과정"

청와대는 전 정권에서 비롯된 문제점을 지적하며 "비정상의 정상화"를 주장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런 말은 검찰 수사와 국정원 감사가 과거 정권의 경우처럼 정치 보복이나 국면 탈출용 카드가 아니라는 의미"라고 했다. 그는 "잘못된 것은 국민에게 똑바로 알리고 바로잡을 것이 있으면 바로잡는다는 박 대통령의 '원칙'이 적용된 것이지 특정 세력을 표적으로 삼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그럼에도 원 전 원장의 구속이나 감사원 감사 결과를 두고 이런저런 말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원 전 원장은 이 전 대통령 참모 가운데 핵심 중의 핵심이다. 국정원장 재직 당시 다른 수석들을 배제한 가운데 수시로 대통령 독대(獨對) 보고를 했으며 이 전 대통령도 흡족해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다른 수석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반면 박 대통령과는 대척점에 서 있었다. 악연(惡緣)이라면 악연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친박 인사는 "원 전 원장은 '박근혜'를 대선 후보로서 탐탁지 않게 여겼던 것이 사실이고 그런 그의 인식이 MB정권 초·중반 국정원 운영에도 알게 모르게 반영되지 않았겠느냐"고 했다.

이뿐 아니라 정치권에서는 "2009년 세종시 수정안 파동 때 '원세훈 국정원'이 박 대통령의 동향을 감시했다" "박 대통령에 부정적인 보고서를 국정원의 특정 그룹에서 생산했다"는 말들이 오래전부터 돌았다.

하지만 청와대 관계자들은 "원세훈 전 원장에 대한 검찰 수사나 감사원 감사에 청와대가 관여한 것은 전혀 없다"고 했다. 이명박 청와대의 고위 관계자는 "우리 나름대로 파악해 보니 검찰 수사가 청와대의 '오더'(지시)로 이뤄진 것 같진 않다"면서도 "그러나 검찰이나 감사원이 알아서 움직이는 게 더 무서운 것"이라고 했다.

이명박 청와대에서 일했던 다른 인사는 "박근혜 정권의 성공을 바라지만 이런 식으로 하다가는 결국 지지기반이 줄어들게 될 것"이라며 "차별화를 위한 차별화는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