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오고 나서 마음이 많이 편합니다. 지난 7년이 상처가 됐느냐고요? 그럴 거 뭐 있나요. 한국에 도움이 되기 위해 갔고, 밤낮으로 열심히 일했으니 그걸로 족합니다."

지난 7일 오후, 현지 시각으로는 자정이 넘은 때였는데도 국제전화로 들려온 서남표(77) 전 카이스트 총장의 목소리는 밝았다. 막내 손녀딸이 세 살이 돼 온 가족이 모여 생일 파티를 했다고 했다. 그는 "자녀와 만나 한바탕 재미있게 웃으며 하루를 보냈고, 딸들은 지금 위층에서 자고 있다"며 웃었다.

한국에서만큼 바쁘다는 서남표 전 카이스트 총장은 “성공은 성적 순이 아니라 ‘열정’과 ‘아이디어’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라며 “‘하고 싶은 것’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개혁의 아이콘 혹은 독단적 경영자라는 이중의 평가를 받으며 물러난 서 전 총장은 요즘 평화로워 보였다. 올해 2월 카이스트 총장직에서 퇴임하고 미국 매사추세츠 보스턴 근교의 서드버리에서 지내는 그는 "각종 강의 요청과 세미나, 자문 등으로 집에 있을 시간도 많지 않다"고 했다. 지난 6월에는 '한국 교육에 남기는 마지막 충언(忠言)'이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냈다. 서 전 총장은 "사위들이 모두 외국인이라 반은 한국인이고 반은 외국인인 손주에게 가족사(史)를 알려주기 위해 퇴임 1년 전부터 책을 준비해왔다"면서도, "내 일생의 10%를 보낸 카이스트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도 책에 담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책에는 한국 교육에 대한 쓴소리가 적지 않다. 그는 책에 '최고 명문대 교수들은 서로 전공이 다르더라도 만나면 기본적으로 학문 이야기를 하는데, 한국 교수들은 골프 이야기를 한다'고 썼다. "MIT나 하버드 대학은 교수들이 서로 존경하고 성과를 칭찬해주는 문화가 있는데 서로 음해하는 교수들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는 그는 "카이스트의 문화를 바꾸기 위해 교수들의 비윤리적인 부분을 얘기하다 보니 과거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과거 이야기'란 2006년 7월부터 올해 2월까지 6년 5개월간 카이스트 총장 재임 시절 겪었던 학내 갈등을 말한다. 서 전 총장은 테뉴어 심사제도 강화, 100% 영어 강의 시행, 무시험 선발제도 도입, 징벌적 수업료 등 파격적인 제도를 카이스트에 도입했고 '서남표식' 개혁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일부 교수 및 학생들과 마찰이 2년 넘게 이어졌다. 2011년 학생 4명이 연달아 자살하자 교수들과 정치권의 사퇴 요구가 이어졌다.

'서남표식 개혁'이 '경쟁'을 부추겨 학생들이 자살했다는 비판에 대해 묻자 그는 한동안 입을 떼지 않았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그때 여러 가지로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저도 자식 있는 사람인데…." 이내 그는 마음을 굳힌 듯 말을 이어갔다.

"카이스트는 보통 대학이 아닙니다. 국민이 혈세를 내서 수업료 등을 내주는 학교인데 열심히 하는 게 몸에 맞지 않으면 카이스트에 올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서 전 총장은 35년간 몸담았던 MIT를 예로 들며 "수업료 등 1년에 약 7만달러를 내야 하는 MIT 학생들은 한 학기라도 먼저 졸업하기 위해 애를 쓴다"며 "카이스트 학생들보다 공부량도 많고 경제적 부담도 큰 MIT 학생들과 비교하면, 압박 때문에 학생들이 자살했다는 주장은 억측"이라고 말했다. 이어 "나를 음해한 사람들은 언젠가 스스로 부끄러워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 전 총장은 한국 사회에 여전한 학벌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경력이 아닌 '업적'을 봐야 한다"면서 "돈이 없어서, 기회가 없어서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한 사람이 성공하지 못하는 교육 구조로 사회가 발전할 수 없다"고 했다. "대학 입학 때 어느 과에 수석으로 들어갔다는 말을 평생 써먹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사람이 뭘 했는지보다 어떤 자리에 앉았는지에 주목해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