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립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문제를 풀면서 생기는‘재미’가 내 연구의 가장 큰 동기”라고 답했다.

"상을 노리거나 누가 시켜서 한다면 과학자의 길은 어렵습니다. 스스로 연구하면서 즐거움을 느껴야죠."

김필립(金必立·46)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물리학)는 한국인 첫 노벨 과학상 수상자의 영광을 눈앞에서 놓쳤다. 2010년 영국 맨체스터대의 가임, 노보셀로프 교수는 탄소 원자 한 층으로 이뤄졌으면서도 강철보다 200배나 강한 '그래핀(graphene)'을 발견한 공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김 교수는 이들 다음으로 그래핀을 발견했고, 그 존재를 확증하는 실험은 동시에 했다. 그럼에도 김 교수가 수상자가 되지 못하자 국제 학계에서 이의 제기가 잇달았다.

하지만 김 교수는 지난 5일 경주에서 열린 국제학회 참석차 방한한 자리에서 "그때 노벨상을 받았다면 곳곳에 불려다니느라 연구할 시간이 줄었을 것"이라며 "대학원생 때 다르고 지금 다른, 연구의 재미를 즐기는 게 무엇보다 좋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학문의 즐거움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교수 평가에서 학술지 이름을 따지는 풍토"라고 말했다. 국내에선 교수나 대학을 평가할 때 네이처, 사이언스 등 유명 학술지에 실린 논문 편수를 가장 크게 쳐준다.

"두 학술지는 일반인의 관심도 끌 만한 트렌디(trendy·유행을 따르는)한 연구 결과를 주로 싣습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성과를 내려면 유행을 좇는 것보다 전문 분야에서 꾸준히 실력을 쌓아가야 합니다."

김 교수는 서울대 물리학과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운도 따랐다. "하버드대에서 배우고 싶었던 교수가 다른 한국인 학생을 택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다른 교수 밑으로 갔는데, 마침 그 연구실이 그래핀을 연구하는 곳이었어요." 그는 "지금은 국내 연구 환경이 미국 못지않다"며 "남들 따라가는 연구보다 스스로 즐거운 연구를 하다 보면 한국에서도 충분히 세계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와 가임, 노보셀로프 교수의 학문 경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5월 두 연구진은 이론으로만 제시됐던 물리학의 난제를 그래핀을 이용해 최초로 입증한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나란히 실었다. 학계에서는 "과학사에 기록될 세기의 경쟁"이라고 평한다. 누가 더 즐기며 연구하는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