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국가에서 나라의 운영 방식을 바꾼다는 건 과거의 법을 고치거나 새로운 법을 만든다는 말과 같다. 이것이 법치주의의 근본 원리다. 여야가 지난 대선에서 경쟁적으로 내세운 수백 개의 공약도 대부분 법의 제정과 개정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여야는 지난 4월 '6인 정책협의체'를 열어 양당 공약 가운데 내용이 엇비슷한 공약 83건을 추려내고 이른 시일 안에 입법을 마무리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고 나서 4월과 6월에 임시국회가 열렸다. 그러나 이 기간에 여야 합의로 처리한 법안은 당초 처리를 약속했던 법안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거개가 남양유업이 재고 제품을 대리점에 떠넘긴 사건, 프랜차이즈 대리점주(代理店主) 자살 등 사회적 파문이 일었던 사건의 여파에 떠밀려 국회가 처리를 서두를 수밖에 없었던 법안이다.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를 규제하는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법' 개정안, 편의점·대리점주 같은 '사회적 을(乙)'들의 권익을 보호하려는 '가맹사업거래공정화법' 개정안 등이 그 실례다.

여야가 입에 올리는 빈도를 생각하면 민생 법안 처리는 하루도 더 미룰 수 없는 시급한 현안이다. 근로 시간을 단축하되 정리해고 요건을 강화하는 '근로기준법', '사내하도급근로자보호법', 최저임금 현실화를 위한 '최저임금법'이 그런 법안들이다. 육아 휴직 연장을 위한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법', 무상 의무교육을 고등학교까지 확대하는 '교육기본법', 아파트 수직 증축을 허용하는 '주택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일자리를 만들고, 근로 여성의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 더 지체해선 안 될 법안이다.

여야는 검찰을 바로 세우기 위해 상설특검제 도입법 같은 검찰 쇄신 법안도 처리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특검 임명 방식 등을 둘러싼 이견 때문에 법사위 문턱조차 넘지 못한 상태다.

경제 민주화 부분에서 중대 경제 범죄에 대해선 대통령이 사면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사면법' 개정 논의도 진전이 없다. 돈 빌린 서민을 보호하기 위한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 소비자들의 권익을 키우기 위한 '금융소비자보호법' 제정안도 완급(緩急)을 따져 법 처리 일정을 확정할 일이다.

국정원 댓글 사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논란도 국회가 엄중히 처리해야 할 중대 사안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여야가 국민에게 약속한 걸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민생 법안은 그보다 더 중요한 안건일 것이다. 지금 같아선 그 법안은 빨라야 8월 임시국회, 그때도 안 되면 9월 정기국회로 넘어갈 수밖에 없게 됐다. 여야는 '민생'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지 말든지, 입에 올리려면 실천의 속도를 높여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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