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훈법엔 '훈장·포장은 국가에 뚜렷한 공적을 세운 사람에게 수여한다'고 돼 있다. 나라가 국가와 사회에 공(功)을 쌓은 이들에게 훈장·포장을 주는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공동체가 함께 쌓아 올려야 할 가치(價値)가 무엇인지 국민에게 알리고, 많은 사람이 이들의 모범을 따라 하는 분위기를 형성해 공동체를 더 든든한 기반 위에 올려놓기 위해서다. 국가와 사회를 위해 기여한 사람을 훈장·포장으로 표창하는 것은 불의를 저지른 사람을 법(法)으로 다스리는 것과 함께 공동체를 공동체답게 유지하는 근본 동력(動力)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작년 한 해 정부가 수여한 훈장·포장이 무려 2만857개였다. 하루 57개씩이다. 이명박 정부는 임기를 한 달 남겨둔 지난 1월 29일 국가를 위해 무슨 기여를 했는지 알 수도 없는 측근 등 129명에게 훈장을 달아줬다. 그러자 야당은 보은(報恩) 훈장이냐고 비판했지만, 5년 전 노무현 정부도 비슷한 시기에 47명에게 무더기 훈장을 줬다. 2011년 10월부터 2012년 6월 말까지 4대강 사업과 관련해 정부 포상을 받은 공무원, 산하기관 임직원, 건설업체 관계자가 무려 1152명이나 됐다.

훈장·포장을 남발하다 보니 별일이 다 벌어진다. 일부 언론에 보도된 직능경제인단체총연합회라는 단체의 정부 훈장·포장 추천 대상을 정하는 심사위원 회의에서 오간 대화 녹취록 내용은 기가 막힌다. 2009년 회의에선 훈장은 4000만원, 포장은 1000만원 이상 찬조금을 협회에 낸 사람만 추천하기로 자기들끼리 기준을 정했다. 작년 6월엔 회의 도중 찬조금을 500만원 낸 모 협회 회장 대행에게 전화해 2500만원을 더 내겠다는 약속을 받고 나서 국민훈장 동백장 후보로 정했다. 직능경제인단체총연합회엔 마사지사연합회·국제경호협회·대한당구협회 등 290여개 단체가 소속돼 있다. 직능경제인단체총연합회처럼 정부 포상 후보자를 추천하는 단체가 108곳이나 된다. 협회들이 찬조금 징수를 위해 뿌리다시피 하는 훈장, 공무원이나 정부 산하기관 직원들이 돌아가며 받는 훈장·포장의 권위(權威)를 누가 인정해주겠는가.

북한 군인들이 가슴에 주렁주렁 찬 훈장은 아무도 존경하거나 우러르지 않는 쇳덩어리다. 훈장·포장은 누가 봐도 국가와 사회에 뛰어난 공적을 남겼다고 고개를 끄덕일 사람에게 수여해야 제값을 하게 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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