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김정일의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전문(全文)이 공개된 뒤 "노 전 대통령은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함부로 못 건드린다고 강조했을 뿐" "NLL 성격을 바꾸자는 얘기였을 뿐"이라는 친노 세력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이 NLL을 포기하는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화록에 "NLL을 포기하겠다"는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은 없다. 그는 "NLL은 현실로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NLL은 바꾼다 어쩐다가 아니고 옛날 기본 합의(남북 간 현 경계선을 인정키로 한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연장선상에서 협의해 나가기로 하고…"라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A4용지 20쪽을 넘는 NLL 관련 대화 중 이런 발언은 몇 마디에 지나지 않는다.

김정일은 정상회담에서 NLL 북쪽은 지금처럼 북한 영해로 놔두고 남쪽에만 공동어로수역(평화수역)을 설치하자고 했다. 공동수역에선 해군을 물리자고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 제안에 찬성하면서 "(공동수역은) 군대 없이 경찰이 관리하자"고 했다. 다시 말해 현재 NLL의 남쪽 충청남도 정도의 면적(8000㎢)에서 우리 해군이 철수하고 남북 경찰이 관리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그 수역을 어떻게 대한민국 영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노 전 대통령 발언은 명백하게 NLL을 포기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NLL이 "국제법적 근거도 없고 논리적 근거도 분명치 않은" "위험한 괴물"이라고 했다. 회담이 진행되면서는 "NLL은 바꿔야 한다" "(NLL이) 헌법 문제라고 자꾸 나오는데 헌법 문제 절대 아니다"고도 했다. "남측에서는 이걸 영토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고도 했다. 우리 대통령이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하며 독도 영유권에 대해 "국제법적으로 근거도 없고, 논리적 근거도 분명치 않은 괴물"이라고 말했다 해도 "독도 포기 발언이 아니라 독도 성격을 바꾸자는 얘기였다"고 하겠는가.

노 전 대통령은 "(서해 평화지대가) 기존의 모든 경계선에 우선하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지 않은가"라고 했다. 회담 말미에 김정일이 "양측이 용단을 내려서 그 옛날 선(線)들 다 포기한다"라며 의향을 묻자, 노 전 대통령은 "일거에 해결하기로 하고 실무 협의를 해나가면 내 임기 동안에 NLL 문제는 다 치유가 된다. 그건 NLL보다 더 강력한 것"이라고 호응했다. 이런 노 전 대통령의 옆에는 국회에서 "NLL은 기본적으로 영토 개념은 결코 아니다"고 답변했던 이재정 통일부 장관이 앉아 있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해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 관여했던 노 측 인사들은 대선 전 "남북 정상회담에서 NLL 문제는 거론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해왔다.

남북 정상회담 뒤 열린 남북 국방장관 회담에서 우리 군은 NLL 남쪽에만 공동수역을 설정하자는 북측 주장을 수용하지 않고 버텼다. 영해를 버리고 수도권 측면을 적(敵)에게 내주는 행위를 받아들였다면 그건 더 이상 군인이 아닐 것이다. 당시 북측은 "(NLL을 고집하는 것은) 북남 수뇌 회담의 정신과 결과를 모르고 하는 얘기이다. 노 대통령에게 전화해 물어보라"고까지 했다고 한다. 남북 국방장관 회담은 결국 결렬됐다. 노 전 대통령이 당초 뜻을 번복했기 때문이 아니라 당시 임박한 대통령 선거에서 여당 후보에게 역풍이 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난해 대선 중에는 박근혜 후보가 "NLL이 존중된다면 공동어로수역 설정도 논의해 볼 수 있다"고 하자, 북은 무지막지한 욕설을 섞어가며 "공동어로수역 설정 문제는 북방한계선 자체의 불법 무법성을 전제로 한 북남 합의 조치의 하나이다. (박 후보 발언은) 이런 합의 경위와 내용조차 모르는 무지의 표현"이라고 비난했다. 노 전 대통령이 NLL을 버렸는데 무슨 딴소리냐는 뜻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친노 세력은 화근(禍根)을 키워가지 말고 차제에 노 전 대통령 발언을 딛고 올라서 NLL에 관한 국민의 불안을 해소하는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야당을 위한 길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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