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미학과 선후배인 보수 성향의 논객 변희재 주간미디어워치 대표와 진보 성향의 논객 진중권 동양대 교수 사이의 '논문 표절'을 둘러싼 논란이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지난 21일 미디어워치의 연구진실성검증센터(센터장 황의원)는 진 교수를 석사 논문 표절 혐의로 동양대와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에 제소했다고 밝혔다.

이는 변 대표가 지난 12일 미디어워치 홈페이지에 진 교수의 석사논문 표절과 관련된 자료를 공개한데 이은 것이다.

연구진실성검증센터는 이날 "진 교수의 석사 논문은 특정 단행본에 대한 편역에 가까운 형식으로, 애초 정식 학위논문으로서의 표준적인 자격요건조차 갖추고 있지 못하고 있다"며 "출처 표시와 인용 표시가 제대로 된 부분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표절 혐의도 광범위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우리가 검증한 그 어떤 학위 논문보다 결함이 많아 논문 취소, 학위 박탈 가능성이 높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진 교수의 논문, 도대체 뭐가 문제?

미디어워치에 올려진 진중권 교수의 논문 표절 의혹 증거

변 대표 측이 표절 의혹을 제기한 논문은 진 교수가 20여년 전인 1992년 서울대 미학과 대학원에 제출한 석사학위 논문 '유리 로뜨만의 구조기호론적 미학연구'이다.

구(舊)소련의 대표적 기호학자였던 로뜨만이 1970년 출판한 '예술 텍스트의 구조(Структура художественного текста)'라는 학술서를 분석한 것이라고 진씨는 밝혔다.

그러나 연구진실성검증센터 측의 주장에 따르면, 진 교수의 이 논문은 표준적인 학위논문의 형식과 내용을 따르지 않았다. 즉 연구(research)가 아니라 해설(review)이라는 것이다.

센터 측은 "국제표준화기구(ISO)에 따르면 학위논문(theses)은 '저자의 연구와 발견을 펼쳐나가는 문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진 교수의 논문은 연구자의 연구와 발견이라는 게 없다. 이것이 어떻게 서울대의 학위심사를 통과할 수 있었는지 의혹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또 센터 측은 "진 교수의 논문에는 '예술 텍스트의 구조' 속 문장을 그대로 번역한 흔적이 발견된다. 특히 진 교수의 논문 64·66·68페이지에는 '예술 텍스트의 구조'를 그대로 번역·복사했다. 물론 인용표시나 출처표시는 제대로 돼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센터 측은 "문대성 새누리당 의원의 논문 표절에 대해 '인문학자의 양심' 등을 운운했던 진 교수야말로 자신의 논문에 대한 진실을 밝히라"고 주장했다. 또 진씨가 몇년 전 한양대 특강에서 논문 짜깁기와 관련된 자신의 경험을 밝히는 발언을 했다며 이를 폭로하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이에 대해 진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내 논문은 연구논문이 아닌 리뷰 논문"임을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서울대 미학과·철학과의 논문은 모두 리뷰 논문으로 쓰고 학위를 받는다"고 주장했다. "인용과 출처표시에도 문제가 없다"며 "1억원 민사소송을 걸겠다"고 했다.

◇대학 선후배인 변희재와 진중권, 무슨 악연(惡緣)?

조선일보DB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

대표적인 인터넷 논객으로 꼽히는 변 대표와 진 교수 ‘온라인 싸움’은 이번뿐만이 아니다. 지난 11일 변 대표는 진 교수를 KBS 아나운서 출신 정미홍 더코칭그룹 대표 성희롱 혐의로 고발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진 교수가 트위터에서 보수 논객으로 활동하는 정 대표를 향해 “궁정동(박정희 전 대통령의 안가)에서 불러줄 만한 외모는 아닌 것 같던데… 혹시 정미홍씨 노래를 잘 하는 거 아닐까요?” 등의 트위터 멘션을 날린 것이 성희롱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또 두 사람은 지난해 한 인터넷TV에서 진행한 ‘사망유희’라는 토론 프로그램에 나란히 출연해 NLL과 정수장학회 등 첨예한 시사 현안에 대해 양자(兩者) 대결을 벌이기도 했다.

재밌는 건 이 토론이 변 대표가 진 교수에게 ‘토론에서 이기면 당신에게 건 소송을 취하하겠다’는 조건으로 제안했다는 것이다. 변 대표가 취하 제안한 소송이란, 2009년 변 대표가 진 교수에 대해 ‘진중권이 주도한 한예종 교육 사업이 부실하게 운영됐다’ 등의 의혹을 제기하자, 진 교수가 변 대표를 ‘듣보잡(듣도보도못한 잡놈)’ ‘매체를 창간했다 망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등으로 비난한 사건을 말하는 것이다.

변 대표는 진 교수를 허위사실 유포 및 모욕죄로 고발했고, 법원은 진 교수에 대해 벌금 300만원의 유죄 판결을 내렸다. 승소한 변 대표는 다시 같은 건으로 진 교수에 대해 손해배상 소송까지 청구했다.

그러나 기대 속에 시작됐던 ‘사망유희’는 진 교수가 토론 중 분(憤)을 참지 못하고 토론장에서 뛰쳐나가면서 2회만에 중단됐다. 진 교수는 직후 트위터에서 “변희재가 오늘은 토론 준비를 철저히 해왔다. 팩트에서 밀렸다”며 패배를 인정하기도 했다. 변 대표는 ‘토론장에 나온 것만 해도 됐다’며 그에 대한 소송을 취하했다.

조선일보DB 진중권 동양대 교수

도대체 두 사람은 왜 이렇게 싸우는 걸까. 두 사람은 사실 서울대 미학과 82학번(진 교수)-94학번(변 대표) 선후배 사이다. 그러나 1990년대 말부터 본격화된 온라인 토론 문화와 인터넷 논객 대립 등으로 말미암아 두 사람 간의 갈등 양상이 계속 꼬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진 교수와 변 대표의 ‘첫 만남’은 1999년 당시 최고의 논객으로 꼽혔던 강준만 전북대 교수를 둘러싼 대립에서 시작됐다고 보는 게 네티즌들의 대체적인 시선이다.

당시 진 교수는 강 교수를 인터넷 게시판 ‘대자보’ 등을 통해 강하게 비난했고, 당시 대학생이던 변 대표가 강 교수 입장을 대변해 ‘맞짱’을 뜨면서 앙금이 시작됐다고 본다.

이어 두 사람은 군 가산점 문제, 영화 ‘디워’ 문제, 한예종 부실 운영 의혹, 미네르바 논란 등을 둘러싸고 사사건건 온라인 토론장에서 부딪쳤다. 두 사람은 MBC ‘백분토론’ 등에도 자주 등장하며 진보-보수 측 입장을 전달해왔다.

이랬던 것이 최근 트위터 등 SNS를 타고 두 사람 간 싸움이 그야말로 '생중계'되면서 양측간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네티즌들은 “두 사람 간의 악연, 논문 표절 제소로 과연 어디까지 갈 것인가”, “과연 진중권 교수의 논문이 표절인가… 사실이든 아니든 두 사람 중 하나는 분명 크게 상처받을 듯”, “두 사람 사이의 트위터 싸움을 보는 것만도 피곤해진다” 등의 반응을 보이며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