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코레일 등 10여개 공공 기관이 진행하고 있던 기관장 공모 절차를 중단시켰다. 청와대는 "후보자 수를 기존 3배수 정도에서 더 늘리라"고 지시했다. 시비와 잡음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KB·NH농협금융지주 회장 같은 금융기관장 자리는 전직 재무 관료를 뜻하는 '모피아' 선·후배들이 나눠 가졌고, 인천공항·토지주택공사 사장은 관할 부처인 국토부의 전직 관료들이 차지했다. '관치(官治) 금융 부활' '낙하산 투하'라는 해묵은 비판이 다시 나올 수밖에 없다. 정치권과 관가, 금융가에서는 '정권 실세 개입설' '특정 학맥(學脈) 작용설'이 돌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동안 공공 기관 인사 기준으로 '전문성'과 '국정 철학 공유'를 제시하면서 "낙하산 인사는 잘못된 일"이라고 해왔다. 그런데 지난 한 달 사이 정부가 뽑은 공공 기관장 13명 가운데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등 10명(76%)이 박 대통령 대선 캠프나 인수위에 몸담았던 교수나 전직 관료이다. 이게 전부 대통령의 뜻인지, 아니면 누군가 권한을 남용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세간에는 '청와대를 통하지 않으면 공공 기관장이 될 수 없다'는 게 상식이 돼 있다. 이래서는 후보자 수를 지금보다 몇 명 늘린다고 논란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정부는 18일 석탄공사 사장과 원자력안전기술원 원장 해임을 건의키로 하는 등 100개 공기업 기관장에 대한 경영 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이를 토대로 본격적 공기업 임원 물갈이가 시작될 것이다. 앞으로 있을 인사에서도 시비와 논란이 이어지면 '이 정권도 결국 끼리끼리 다 해먹는다'는 평판이 굳어질 것이다. 공공 기관 개혁이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이고 정치적 부담도 커지게 된다.

결국 다른 누구가 아니라 청와대가 결단해야 할 문제다. 청와대가 국가 정책의 큰 줄기를 맡고 있는 대형 공공 기관의 사장 인선까지 간여하지 말라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그러나 나머지에 대해선 각 공공 기관 인사추천위가 실질적 권한을 갖고 유능한 경영인을 찾아내면 청와대는 그 후보의 하자 여부만 검증하는 식으로 시스템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

그 경영자가 반드시 조직 내부 출신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금융 공기업은 전체 14곳 가운데 설립된 지 60년이 다 되는 산업은행과 설립 45년 된 광주은행을 비롯해 11곳이 창사 이후 내부 출신 최고경영자를 한 명도 내지 못했다. 이는 지나친 일이다. 정부가 임원 선임권을 공공 기관에 맡기면 이들이 진입 장벽을 만들어 외부 인재가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할 것이란 우려도 있을 수 있다. 이 경우 인사추천위 회의 내용을 속기록으로 남겨 자기들의 선택에 대한 책임까지 지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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