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찰청 분석관들이 국정원 직원의 컴퓨터 등을 들여다보며 조사하는 모습.

"오늘의 유머에서 게시글이 나왔어요."

"그럼 그건 이제 수사팀의 몫이고…. 이거는 언론 보도에는 안 나가야 할 거 아냐."

"'결과적으로는 없는 것으로 하자' 그거까지는 우리가 이야기가 되었잖아."

"진짜 이건 우리가…. 지방청까지 한 번에 훅 가는 수가 있어요…."

작년 12월 14일부터 16일까지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증거분석팀 분석관들이 디지털증거분석실에서 국정원 여직원 김모(29)씨의 컴퓨터를 분석하면서 나눈 대화의 일부다. 검찰이 압수한 분석실 CCTV 영상에는 경찰이 댓글작업과 관련해 삭제된 파일을 복구해내, 정치·대선 개입 의혹이 있는 게시물을 찾아낸 정황이 고스란히 녹화되어 있었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14일 김용판(55) 전 서울청장을 직권남용, 경찰공무원법 위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면서 경찰이 대선 직전 어떻게 증거를 은폐하고 보도자료를 조작했는지 공개했다.

검찰에 따르면 작년 12월 16일 밤 11시에 서울청 사이버범죄수사대가 발표한 여직원 김씨의 컴퓨터 하드디스크 분석 결과와 다음 날 오전 진행된 김 전 청장의 언론간담회 내용은 조작된 것으로 나타났다. 사건의 실체를 밝혀야 할 경찰이 국정원의 선거 개입 혐의를 벗겨주는 내용으로 수사 상황을 조작했다는 것이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작년 12월 13일 서울청 사이버범죄수사대에 김씨의 컴퓨터 증거 분석을 의뢰했다. 그러나 검찰은 "경찰이 이때부터 국정원의 선거 개입 의혹을 해소하는 쪽으로 수사 방향을 미리 정해놓고 증거 짜맞추기에 나섰다"고 밝혔다. 이 모든 과정에는 김 전 청장의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또 서울청이 당시 수사를 담당한 수서서 수사팀이 의뢰한 검색 키워드를 100개에서 4개로 줄이도록 지시하고, 100여 페이지에 이르는 디지털 증거 분석 결과를 폐기했다고 밝혔다. 사이버수사대는 분석 하루 만에 30여 개의 ID 등을 발견했지만, 김 전 청장이 수서서 수사팀에 이런 사실을 알리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다고 검찰은 밝혔다. 검찰은 김 전 청장이 디지털증거분석 결과 보고서에 '혐의 사실 관련 내용을 발견치 못했다'는 허위 내용을 작성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김 전 청장이 보고 흔적을 지우기 위해 보고서도 수기로 작성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에 김 전 청장 측은 "오히려 검찰이 무리한 기소를 했다"며 "법정에서 진실이 가려질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