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올 것. 부인과 자녀 동반도 안 됨. 언론 인터뷰 금지. 개최국은 외부인을 철저히 차단할 것. 오고 간 이야기는 외부 발설 금지.'

음모론자들이 '세계의 그림자 정부'라고 부르는 빌더버그 그룹(Bilderberg Group) 회의 참석 규칙이다. 빌더버그 그룹은 유럽·북미의 정·재계 실력자 100여명이 매년 모여 주요 현안에 대해 토론하는 모임이다. 가끔 참석자 명단이 언론에 유출되기는 하지만, 이들이 어떤 내용을 이야기했는지는 외부에 제대로 알려진 적이 없다. 1954년 세계 금융계의 막후 실력자로 알려진 로스차일드 가문의 재정적 후원 아래 네덜란드 빌더버그 호텔에서 첫 회의가 열렸다. 이 모임의 이름도 여기서 유래했다. 유대계 금융 가문인 로스차일드는 1700년대 이후 독일·영국·프랑스를 무대로 금융업을 통해 천문학적 부를 쌓았으며, 이스라엘 건국에도 깊숙이 개입했다. RIT 캐피털 파트너스 등의 회사를 통해 지금도 금융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왼쪽부터) 키신저 前 美국무장관, 슈미트 구글 회장, 라가르드 IMF총재, 엔더스 EADS 최고경영자, 캐머런 英총리.

올해 이 회의가 지난 7일(현지 시각)부터 사흘간 영국 런던 북서부 와포드 인근의 그로브 호텔에서 열렸다. 올해는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과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마커스 에이지어스 전 바클레이스은행 회장, 토머스 엔더스 EADS 최고경영자, 피터 서덜랜드 골드만삭스 회장 등 140여명이 참석했다. 또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와 조지 오스본 재무장관 등도 자리를 함께했다. 올해는 사이버 전쟁과 정부 부채, 키프로스 구제금융, 북한 핵 문제 등이 주요 의제가 될 것이라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보도했다.

빌더버그 그룹은 10여 개국 출신의 35명으로 구성된 운영위원회가 핵심이다. 이들이 매년 참석자들을 결정한다. 현재 이 운영위원회의 의장은 프랑스 금융회사인 악사(AXA)의 앙리 드 카스트리 최고경영자(CEO)가 맡고 있다. 조직 운영자금은 개인 기부로 이루어지며, 매년 행사비는 회의가 열리는 국가 출신의 운영위원들이 부담하는 게 원칙이다. 공식 홈페이지에 운영위원들의 명단과 역대 회의의 의제 등이 올라와 있지만, 그 이외 정보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모임 자체가 베일에 싸여 있다 보니 음모론자들의 단골 공격 대상이다. '빌더버그 그룹에 대한 진실'이라는 책의 저자인 리투아니아 출신 작가 다니엘 에스툴린(46)은 "이 그룹의 창시자는 이전에 나치주의자였다"며 "이들은 각국 대통령을 선출하고 미디어를 통제한다"고 말했다.

극소수 실력자들이 모여 세계 이슈를 좌우한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이에 반대하는 운동도 있다. 지난해 미국 버지니아에서 열린 회의에는 월가 점령 시위대뿐 아니라 보수주의 단체인 티파티 회원들도 반대 운동을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