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환자가 실수를 하더라도 일부러 그런 게 아니니까 화내거나 혼내지 마세요. 후회만 남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도 치매에 걸리기 전에는 우리를 사랑하고, 바른길로 인도하려고 가르치시던 분이잖아요."

올해로 데뷔 34년째인 가수 현숙은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7년 동안 직접 돌봤다. 현숙의 아버지는 치매와 전쟁을 치르다 지난 1996년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를 여의고 17년이 지났지만, 현숙은 "내 경험을 통해 사람들이 치매와 벌이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 여의도 63빌딩 컨벤션홀 공연장에서 만난 현숙은 '치매 홍보대사' 연예인답게 치매 환자를 이해하고 돌보는 법에 대해 진솔하게 얘기했다.

지난달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63빌딩의 컨벤션홀에서 가수 현숙이 1996년 치매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전북 김제에서 공무원으로 정년퇴직한 현숙의 아버지는 지난 1989년 치매 판정을 받았다. 건강했던 아버지가 갑자기 "다리에 힘이 없다"고 말하더니 밤새도록 소리를 지르거나 집 안의 물건을 어지럽혔다. 현숙씨는 "그저 나이가 드셔서 심술을 부리신다고 생각했지, 치매에 걸린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그해 여름 공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현숙에게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서울 은평구 응암파출소였다. 현숙은 "수화기 너머로 아버지가 길을 잃어서 집을 못 찾고 있다는 말이 들려왔다"고 했다. 다음 날 아버지를 모시고 대학병원에 찾아간 현숙은 아버지가 치매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미 치매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다. 그날 현숙은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 팬티에 '가수 현숙의 아버지'라는 문구를 실로 새겼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조금만 더 빨리 병원에 갔더라면 증상에 빨리 대처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들었고, 지금도 늘 그 생각에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현숙의 아버지가 치매 진단을 받았을 때는 이미 치매 증상이 상당히 진행된 뒤였다고 한다. 아버지는 치매 진단을 받은 뒤 1년 만에 지난 수십 년 동안의 기억을 잊어버렸고, 가족들의 얼굴도 잘 구분하지 못하게 됐다. 현숙은 "'지금처럼 조기 진단의 중요성을 알았더라면 아버지와 좀 더 행복한 시간을 보냈을 텐데'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항상 든다"고 말했다.

그는 "누구보다 건강했던 아버지가 힘없이 허공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기가 무엇보다 힘들었다"면서도 "마냥 지켜만 볼 수는 없었다"고 했다. 그는 궁금한 점이 생길 때마다 병원을 찾아 의사의 조언을 듣고 철저히 행동으로 옮겼다. "치매 환자를 혼자 놔두지 말고 가능한 한 자주 밖으로 데리고 나가라"는 의사의 조언에 따라 지방으로 공연을 갈 때마다 아버지를 모시고 다녔다. 공연 전에 공연장 직원들에게 "우리 아버지와 잠시만 함께 있어 주세요. 금방 다녀올게요"라고 말하고, 공연을 마친 뒤에는 아버지를 모시고 공연장 근처 공원을 30분씩 산책했다. 틈날 때마다 가족의 사진이 담긴 앨범을 꺼내 아버지에게 보여주면서 기억을 끄집어내기도 했다. 그는 "나중에는 (아버지가) 가족들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해 내곤 내 이름도 불러줘 깜짝 놀랐다"며 "치매에 걸렸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 현 상황에서 더 악화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2008년 대한치매학회 '치매 홍보대사'로 임명돼 지금까지도 치매 환자 돌보기에 힘쓰고 있는 현숙은 치매 환자 가족들을 위해 꼭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고 했다.

"치매는 숨기거나 부끄러워해야 할 병이 전혀 아니에요. '오픈'해서 도움을 요청하고 힘든 점이 있으면 주위와 나눠야 합니다. 치매 환자를 돌보더라도 절대 건성으로 대해서는 안 됩니다. 정말 사랑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대해주세요. 환자는 다 알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