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울릉군 울릉읍 저동리 산 1-1번지의 죽도(竹島)는 울릉도에서 다시 배를 타고 20분간 들어가야 하는 절해고도(絶海孤島). 여기서 더덕 농사를 짓고 사는 김유곤(45)씨는 이 섬의 유일한 주민이다. 어머니는 11년 전 산나물을 캐다가 발을 헛디뎌 세상을 떠났고, 5년 전 아버지마저 심장마비로 타계한 뒤 김씨와 일곱 살 먹은 강아지 마루만 남았다. 울릉도에서 자취했던 학창 시절과 군 입대 시기를 제외하면 김씨는 30년간 줄곧 이 섬에서 살았다. 부모님은 돌아가셨지만, 자신마저 이 섬을 떠나면 무인도가 된다는 생각에 혼자 이 섬을 지키고 있다.

대나무가 숲을 이뤄 '죽도'로 불리는 이 섬에 1일 반가운 손님이 찾아갔다. 피아니스트 백건우(67)와 영화배우 윤정희(69)씨 부부. 죽도의 유일한 주민 김유곤씨 한 사람을 위해 연주회를 열기 위해서였다. 죽도에서 연주를 마치고 이날 오후 울릉도로 돌아온 백씨 부부가 전하는 풍경은 이랬다.

1일 죽도에서 주민 김유곤(왼쪽)씨의 피아노를 피아니스트 백건우(오른쪽)씨가 연주하고 있다. 백건우씨는 이날 한 명의 관객인 김씨를 위해 피아노를 연주했다. 연주를 마친 피아니스트 백건우(오른쪽)씨가 이 섬의 유일한 주민 김유곤씨와 얼싸안고 있다.(작은 사진)

◇"백건우가 누군가요?"

절벽을 깎아 만든 365개의 '달팽이 계단'을 오르고 나니 말끔하게 단장을 마친 김씨의 집이 보였다. 김씨의 집 마루에는 가정용 업라이트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김씨가 울릉도에서 초·중·고교를 다닐 적, 방학 때만 아들을 볼 수 있었던 어머니는 아들을 안쓰러워하며 피아노를 선물했다. 어머니 생각에 잠긴 김씨에게, 백건우는 "평소 어머님이 즐겨 부르던 노래가 뭐였어요" 하고 물었다.

김씨는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라는 노랫말로 시작하는 미국 민요 '매기의 추억'을 얘기했다. 피아노 뚜껑을 연 백씨는 그 자리에서 '매기의 추억'을 연주했다. 잠시 연주를 듣던 김씨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10여년 만에 처음으로 들어보는 피아노 소리"라고 했다. 노래를 부르던 김씨도 차츰 목이 멨고, 피아노를 치던 백씨의 눈망울도 촉촉해졌다. 김씨는 "저녁에 혼자 섬에 있으면 평생 고생만 하셨던 '엄마 생각'이 많이 난다"고 했다.

이 말을 듣던 백건우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비창' 가운데 정감 있는 2악장을 김씨에게 들려줬다. 인기 팝송 '미드나이트 블루'에도 인용된 친숙한 선율. 백씨가 연주를 마치자, 김씨는 참외와 사과, 딸기를 내왔다. 손수 끓인 라면에는 영덕 게를 넣어 국물을 냈고, 생더덕에 고추장을 듬뿍 찍어 백씨 부부의 입에 넣어주었다. '한 사람을 위한 연주회'를 마친 백씨 부부는 다시 365계단을 내려가 배에 올랐다. 김씨는 계단 위에서 백씨 부부가 탄 배를 바라보며 한없이 손을 저었다.

◇백건우 섬마을 콘서트, 3·7일 울릉도, 사량도

피아니스트 백건우란 이름도 생소했다는 김유곤씨에게 '1인 청중'이 된 소감을 전화로 물었다. "솔직히 백 선생님이 그렇게 유명한 분인 줄도, 피아노 연주가 이렇게 감동적이란 것도 처음 알았어요." 백씨는 "한 사람이라도 진정으로 음악을 듣고 싶어 한다면, 내 마음도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하게 된다"고 했다. 백건우의 '섬마을 콘서트'는 3일 울릉도 저동항과 7일 통영 사량도에서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