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상파울루 대학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뇌 은행(Brain Bank)'이 있다. 치매 등 각종 질환으로 사망한 환자들의 뇌 4000여개를 체계적으로 보관·관리하는 곳이다.

10년 전 브라질 정부의 지원을 받아 설립된 이 뇌 은행은 현재 세계 뇌 연구의 중심지나 다름없다. 각국 연구진이 치매를 비롯한 각종 뇌 질환의 원인, 증상, 예방법 등을 연구하기 위해 가장 먼저 이곳을 찾기 때문이다. 뇌 은행은 이들의 연구에 필요한 뇌 조직을 제공하고 20개국의 연구 성과를 공유하는 일종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고 있다.

대구 중구에 있는 한국뇌연구원에서 한 연구원이 알츠하이머에 걸린 쥐의 뇌 샘플을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있다.

브라질뿐만이 아니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 대부분과 미국, 일본 등은 저마다 국가 차원의 뇌 은행을 운영 중이다. 서울아산병원 이재홍 교수는 "선진국은 치매 환자가 사후 기증한 뇌를 통해 국가 치매 연구를 진행한다"며 "'한국형 치매'를 연구하기 위해선 뇌 은행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형 치매가 따로 규정된 것은 아니지만, 뇌 손상 분석을 통해 한국인이 많이 걸리는 치매의 특징을 알고 이에 맞는 예방·치료법을 개발해야 한다는 취지다.

한국에는 아직 뇌 은행이 없다. 2011년 설립된 한국뇌연구원이 그나마 뇌 은행 기능을 할 만한 기관으로 평가받지만, 지금도 동물 뇌를 통한 기초 연구를 주로 할 뿐 뇌 은행 설립에 관해선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상태다. 연구원 관계자는 "(뇌 은행 설립과 관련해) 교육부와 협의 중인데, 설립 필요성에만 공감하는 정도라 구체적 계획은 마련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뇌 은행이 뿌리내리지 못한 것은 사후 장기 기증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부정적 인식 탓이 크다. 특히 치매 등은 대부분 의식이 온전치 않은 환자 대신 보호자가 기증 여부를 결정하는데, 전통 장례 관습상 가족의 뇌를 선뜻 내놓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다행히 최근에는 이런 인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본지와 설문조사 기관 미디어리서치가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에게 '국내 치매 연구를 위해 사후 뇌를 기증할 의향이 있느냐'고 물은 결과, 400명(40%)이 '그렇다'고 답했다. 이 중 82명은 '꼭 기증하겠다'고 답하기도 했다. 뇌 기증에 대한 사회 인식이 개선되면서 뇌 은행의 기반 여건은 어느 정도 충족된 셈이다.

한설희 건국대병원장은 "뇌 은행은 국가 치매 대책의 최대 인프라"라며 "정부가 뇌 은행 설립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