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서울 노원구 하계동 현대우성아파트에선 외벽 도장 공사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1320가구, 4000여명이 사는 이 아파트(1988년 준공)는 2004년 도장 공사를 했다. 도장 공사 후 10년이 다 돼가면서 외벽 곳곳의 칠이 벗겨지고 균열도 생겼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작년 2월 도장 공사를 다시 하기로 의결했다. 입주자 대표들이 알음알음으로 업체들을 돌며 가(假)견적을 내봤다. 그 결과 12개 동(棟) 벽면 14만7000여㎡의 균열을 메우고 칠하는 데 3억8790만원 정도면 최적이라고 봤다.

'아파트 닥터'의 조언을 받아 공사비를 절감한 서울 노원구 현대우성아파트 정용주 관리소장과 입주자대표회의 간부 전경용·김정득씨, 아파트 닥터 자문위원인 남석우 한국도장기술인협회 사무국장(오른쪽부터)이 13일 아파트 옥상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가견적 가격 3억8790만원은 업체들이 제시한 분야별 최저가를 합산해 나왔다. 페인트와 균열 보수재 등 각종 자재 비용이 7241만원, 도장 기술자와 보조 작업자 인건비로 2억7379만원, 인부들 보험료와 폐기물 처리비로 4170만원을 추산했다. 입주자 대표들은 회의에서 '공사비 가견적'을 "나름 객관적으로 추산했다"고 자평했다. 그때 입주자대표회의 기술이사인 김정득(61)씨가 아이디어를 냈다.

"더 줄일 수 있을지 모르니 노원구청에 가서 '아파트 닥터'의 컨설팅을 받아 봅시다."

'아파트 닥터'는 2011년부터 서울시 25개 자치구가 운영하는 공동주택 전문가 자문단이다. 구청마다 전기·가스·도장·방수 전문가, 변호사·회계사·노무사 등 전문 자격증 보유자 20여명씩으로 구성돼 있다. 아파트 주민들이 도와달라고 'SOS'를 치면 해법을 제시해주는 '아파트의 애·정·남(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인 셈이다.

주민들의 자문에 노원구청에선 25년 경력 남석우(55) 한국 도장기술인 협회 사무국장이 응했다. 그는 미국 도장 감리사 자격증 보유자다.

주민들이 보낸 서류를 꼼꼼히 분석한 남씨는 "가견적에는 도장 기술자 인건비가 20%가량 더 책정된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주민들은 하루 인건비를 15만~20만원 정도로 예상했지만 정부의 표준 노임 단가(10만5730원)보다 너무 많다는 것이다. 남씨는 "작업 인력도 필요 이상으로 잡혀 있었다"면서 "전체적으로 5000만원 정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자문 결과를 토대로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작년 7월 입찰 공고를 냈다. 공사 설명회에 참석한 도장 업체 관계자들에겐 '아파트 닥터'에 자문했다는 사실을 전했다. 남씨가 조언한 대로 자재와 인건비도 구체적인 사항까지 조목조목 따졌다. 업체 8개가 입찰에 참여해, 3억4025만원을 써낸 업체가 공사를 따갔다. 당초 주민들이 예상한 것보다 4765만원이 줄어들었고, '아파트 닥터' 남씨가 조언한 가격과 비슷했다.

입주자대표회의는 공사 작업을 감독하기 위해 주민들로 구성된 '작업 감독조'도 편성했다. 가격을 낮추는 것만큼이나 공사 품질관리도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습도가 80%를 넘는 날, 기온이 5℃ 아래로 떨어지는 날은 작업 중단을 요구했다. 이 역시 남씨의 조언에 따른 것이다.

입주자대표회의 전경용(71) 총무는 "공사비 절감뿐만 아니라 부실 공사 감시 노하우도 배울 수 있어서 아파트 닥터를 활용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