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을 부숴, 말아?"
구식(舊式) 건물에 사는 사람들의 고민은 비슷하다. 그대로 살자니 주거의 질(質)이 너무 떨어지고, 때려 부수고 새로 짓자니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다. 더 큰 고민은, 그곳에 수십년간 쌓인 추억이 발목을 잡는다는 것이다.
건축가 이정훈(38·조호건축 소장·사진)씨는 "우리나라 도심 재생은 신축(新築)보다 개조(리모델링)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젊은 건축가상' 수상자인 그는 시게루 반 파리사무소와 영국 자하 하디드 건축사무소에 근무한 뒤 귀국, 경기도 용인 헤르마주차장과 '곡선이 있는 집' 등의 독특한 건물을 설계했다.
◇"개조란? 과거와 현재, 돈이 딱 떨어지는 건축 미학"
그가 말하는 건물 개조는 "적은 돈으로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감성을 조화시키는 작업"이다. 그것도 "'반드시'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분만 정확하게 넣고 빼며 건축주의 예산에 딱 떨어지게 맞추는 묘미"다.
최근 선보인 개조 프로젝트 2건은 그의 이런 개조 철학을 잘 보여준다. 경남 남해의 '처마 하우스'와 서울 광진구 '에그(Egg)333'. 그는 "남해 프로젝트는 '집 때문에 심란해서 잠이 안 온다'는 건축주의 호소에서 출발한 작업"이라고 했다. 홀로 사는 노모(老母)를 위해 건축주가 고향집을 허물고 새로 집을 지었는데, 정작 그 형태가 '엉망'이었다는 것이다. "땅의 정체성과 풍광을 고려하지 않은, 찍어낸 듯한 도심형 농가주택 디자인이 문제였어요."
집을 찾아가니 뒤편에 소슬거리는 대나무숲과 아름다운 바닷가가 눈부셨다. 주황색 벽돌타일 건물에 흰칠을 하니 '한옥 처마를 빼닮은 선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붕선에 맞춰 양쪽 꼭짓점이 날아가는 듯한 곡선 하나를 그었고, 그 아래엔 대나무에서 영감을 얻은 마름모꼴 루버를 촘촘하게 달아 노모의 사생활을 지켰다.
◇신축 대비 5분의 1 비용
서울 광진구 프로젝트에선 30년 된 2층짜리 시멘트 상가주택을 세련된 카페처럼 변신시켰다. "이 건물에서 아이 셋을 키우며 힘들게 살았다. 낡았지만 부수기는 싫으니 잘 고쳐달라"는 건축주 요청을 받고 찾아간 건물은 외벽에 전선과 파이프가 덜렁거리고 있었다. 건축가는 건물 앞면에 가로·세로 4㎝짜리 방부목을 촘촘하게 붙여 거대한 '나무 옷'을 입혔고, 오른쪽 일부 면에 가로·세로 8㎝짜리 목재를 덧붙여 독특한 패턴을 만들었다.
건축주의 시간은 '에그333'에도 녹아있다. "건축주가 1933년생인데, 이곳 번지수가 33-3이에요. 여기서 어머님이 살기 시작한 때도 30년 전이고요." 건축가는 육각형에 가까운 대지도 둥그스름한 목재 울타리로 감싸, 보드라운 달걀처럼 보이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에그333'이다.
연면적 76㎡(23평), 300㎡(92평)인 두 건물의 개조 비용은 각각 7000만원, 1억5000만원. 신축 대비 5분의 1 수준이라고 한다. 건축가는 "비용의 문제가 아니다. 재생의 문제"라고 했다. "무작정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지으면서 도시는 천편일률적인 '닭장'으로 가득 차고 있어요. 신축할 땐 상가 안에 무조건 주차장을 넣게 돼있는 주차장법, 사선제한 등의 건축법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죠. 저는 개조가, 단순히 '집을 고치자'가 아니라 도시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로 발전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