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을 부숴, 말아?"

구식(舊式) 건물에 사는 사람들의 고민은 비슷하다. 그대로 살자니 주거의 질(質)이 너무 떨어지고, 때려 부수고 새로 짓자니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다. 더 큰 고민은, 그곳에 수십년간 쌓인 추억이 발목을 잡는다는 것이다.

건축가 이정훈(38·조호건축 소장·사진)씨는 "우리나라 도심 재생은 신축(新築)보다 개조(리모델링)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젊은 건축가상' 수상자인 그는 시게루 반 파리사무소와 영국 자하 하디드 건축사무소에 근무한 뒤 귀국, 경기도 용인 헤르마주차장과 '곡선이 있는 집' 등의 독특한 건물을 설계했다.

"개조란? 과거와 현재, 돈이 딱 떨어지는 건축 미학"

그가 말하는 건물 개조는 "적은 돈으로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감성을 조화시키는 작업"이다. 그것도 "'반드시'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분만 정확하게 넣고 빼며 건축주의 예산에 딱 떨어지게 맞추는 묘미"다.

최근 선보인 개조 프로젝트 2건은 그의 이런 개조 철학을 잘 보여준다. 경남 남해의 '처마 하우스'와 서울 광진구 '에그(Egg)333'. 그는 "남해 프로젝트는 '집 때문에 심란해서 잠이 안 온다'는 건축주의 호소에서 출발한 작업"이라고 했다. 홀로 사는 노모(老母)를 위해 건축주가 고향집을 허물고 새로 집을 지었는데, 정작 그 형태가 '엉망'이었다는 것이다. "땅의 정체성과 풍광을 고려하지 않은, 찍어낸 듯한 도심형 농가주택 디자인이 문제였어요."

건축가 이정훈씨가 개조한 경남 남해의‘처마 하우스’. 주황색 벽돌 모양 타일로 마감된 전형적인 농가 단독주택(오른쪽 위)을 대나무숲에서 모티브를 얻은 알루미늄 파사드로 완전히 새롭게 바꿔놨다. 집과 파사드 사이의 공간은 노모가 망중한을 누리는 발코니가 된다.

집을 찾아가니 뒤편에 소슬거리는 대나무숲과 아름다운 바닷가가 눈부셨다. 주황색 벽돌타일 건물에 흰칠을 하니 '한옥 처마를 빼닮은 선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붕선에 맞춰 양쪽 꼭짓점이 날아가는 듯한 곡선 하나를 그었고, 그 아래엔 대나무에서 영감을 얻은 마름모꼴 루버를 촘촘하게 달아 노모의 사생활을 지켰다.

신축 대비 5분의 1 비용

서울 광진구 프로젝트에선 30년 된 2층짜리 시멘트 상가주택을 세련된 카페처럼 변신시켰다. "이 건물에서 아이 셋을 키우며 힘들게 살았다. 낡았지만 부수기는 싫으니 잘 고쳐달라"는 건축주 요청을 받고 찾아간 건물은 외벽에 전선과 파이프가 덜렁거리고 있었다. 건축가는 건물 앞면에 가로·세로 4㎝짜리 방부목을 촘촘하게 붙여 거대한 '나무 옷'을 입혔고, 오른쪽 일부 면에 가로·세로 8㎝짜리 목재를 덧붙여 독특한 패턴을 만들었다.

서울 광진구의 30년 된 상가주택을 개조한‘에그333’

건축주의 시간은 '에그333'에도 녹아있다. "건축주가 1933년생인데, 이곳 번지수가 33-3이에요. 여기서 어머님이 살기 시작한 때도 30년 전이고요." 건축가는 육각형에 가까운 대지도 둥그스름한 목재 울타리로 감싸, 보드라운 달걀처럼 보이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에그333'이다.

연면적 76㎡(23평), 300㎡(92평)인 두 건물의 개조 비용은 각각 7000만원, 1억5000만원. 신축 대비 5분의 1 수준이라고 한다. 건축가는 "비용의 문제가 아니다. 재생의 문제"라고 했다. "무작정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지으면서 도시는 천편일률적인 '닭장'으로 가득 차고 있어요. 신축할 땐 상가 안에 무조건 주차장을 넣게 돼있는 주차장법, 사선제한 등의 건축법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죠. 저는 개조가, 단순히 '집을 고치자'가 아니라 도시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로 발전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