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 걸렸다고 자살하지 말고, 이혼하지 말고, 도망가지 말고, 이 병원으로 오시라고 지었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아 만든 병원이니까. 새롭게 삶을 이어갈 힘과 희망도 여기서 얻어가시라고.”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에 108병상 규모로 세워진 불교계 최초 호스피스병원 ‘정토(淨土)마을 자재(自在)병원’이 다음달 초부터 입원 환자를 받는다. 불교 호스피스 시설 ‘정토마을’ 이사장 능행(能行·54) 스님이 지난 15년간 스님·불자·일반인들에게 1만~2만원씩 성금을 ‘탁발’해 지은 병원이다. 스님은 9일 기자 간담회에서 “1999년부터 매년 15만㎞씩 차를 운전해 사찰이나 단체를 찾아다니며 모금을 했다. 꼽아보니 달나라를 세번 왕복할 거리”라고 했다. 그동안 연인원 30만명이 십시일반 후원자로 참여했다.

15년간 1~2만원씩 일반인의 성금을 '탁발'해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에 108병상 규모의 불교 최초 호스피스병원 '정토마을 자재병원'을 지은 능행스님은 "오랜 투병생활에 지치면 가족도 힘들고, 우울증에 걸리고, 가정이 파탄나고, 자살하는 경우도 잦다"며 "지금 여기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고통과 고난을 벗어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주는 것이야말로 불교의 사회적 역할일 것"이라고 했다.

스님은 지금까지 2000여명 환자를 임종했다. 출가한 30대 초반부터 소록도, 행려병동 등에서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를 수행 삼아 살며 겪은 일이다. 1997년, 폐암에 걸려 가톨릭 호스피스 시설에서 죽음을 맞게 된 비구 스님과의 만남이 스님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평생 선방(禪房)에서 수행만 하던 분이었는데 말년에 돌봐줄 이가 없었어요. '편히 죽을 수 있는 병원 하나 꼭 지어달라'는 그 분 말이 제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지요." 이듬해 초파일 전날 공주 동학사에서 처음 모금을 시작했다. 노인 한 명이 50원을 넣고 간 게 전부였다. 그게 종잣돈이었다.

이후 스님은 모금 기회가 있다면 전국 어디라도 달려갔다. 입적 직전에 1000원짜리 1장까지 가진 돈을 다 털어서 수건으로 싸매 보내신 노스님, 건축이 벽에 부딪혔을 때 자기 집을 팔아 돈을 보내온 불자 부부도 있었다. 한 성당의 천주교 신자들은 가진 돈을 다 털어 소쿠리에 담아 주기도 했다. 그렇게 돈을 모아 2006년 울산에 병원 부지를 마련했고 2011년엔 착공식을 가졌다.

스님은 "자재병원은 가난한 환자들도 가족에게 부담주지 않고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 숨 끊어졌다고 물건 취급당하지 않고 존엄하게 세상과 작별할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자재병원은 스님과 30만 후원자들의 그런 꿈이 뭉쳐 지어졌다. 승가 병동 24병상을 포함해 재활·호스피스 병동을 따로 갖췄고, 양·한방에 대체의학까지 통합 진료가 이뤄진다. 스님은 "일반 환자는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가난한 분들은 심사를 거쳐 병원비 일부 혹은 전액을 지원할 수 있도록 모금도 계속할 계획"이라고 했다.

완공이 코앞인데 아직도 건축비는 20억 정도가 모자란다. 환자 가정의 간병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전국의 자원봉사자·단체도 모집 중이다. 스님은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정기적으로 와서 간병 봉사를 해준다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자 가정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했다.

"오랜 투병생활에 지쳐 가정이 파탄나고 자살까지 이르는 경우도 봤어요. 생명은 누구나 다 똑같이 고귀하고,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잖아요. 자재병원은 사람들이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다리가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