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외교부 장예쑤이(張業遂) 수석부부장은 지난 2일 박명호 주중 북한 공사를 불러 한반도 긴장 국면을 악화시킬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을 중지할 것을 촉구했다. 장 부부장은 이어 이규형 한국 대사와 로버트 왕 미국 공사도 차례로 불러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군사훈련 자제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 부부장은 "중국은 한반도에서 전쟁이나 혼란이 발생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며 "어느 일방의 도발적인 언행이나 한반도 안정을 해치는 일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중국이 남·북한과 미국 외교관들을 불러 한반도의 긴장 상황을 더 이상 자극하지 말라고 요청한 것은 형식적으로는 어느 편도 들지 않는 균형(均衡) 외교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금의 한반도 위기는 작년 12월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와 올 2월 3차 핵실험에서 시작됐다. 북한은 이어 정전협정 백지화 선언, 서울·워싱턴 불바다 선언, 핵(核) 선제공격 시사, 제2의 조선전쟁 위협, 군(軍)통신선 차단으로 도발 수위를 높여 왔다. 3일부터는 한국 기업 사원들의 개성공단 입경을 차단해 상황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다.

만일 중국의 이웃 나라가 지금의 북한처럼 도발·위협·공갈을 계속한다면 중국이 우리처럼 군사훈련을 통해 대비하지 않을 수 있는가. 중국이 북한의 위협적 도발과 한국의 자위(自衛) 노력을 동일 선상에 놓고 양측에 똑같은 수준의 자제를 촉구하는 것은 균형 잡힌 태도도 아니고 북한을 지지·지원해왔던 나라로서 현 사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중국은 1993년 북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재고를 요구하는 안보리 결의안 825호부터 올 2월 북한 3차 핵실험 직후 채택된 결의안 2094호까지 모두 6차례의 유엔 대북 제재 결의안에 동참했다. 시진핑 정부 출범 이후에는 유엔 제재에 따른 시행 지침을 말단 지방 행정 조직에까지 시달하는 등 과거와 달라지는 듯한 모습도 보이고는 있다. 하지만 이번 중국 외교부의 태도를 보면 2010년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 때 '가해자 북한'에 대해 경고하지 않고 '피해자 한국'에만 자제를 주문하던 일을 떠올리게 된다.

중국은 시진핑 시대를 맞아 미국과 새로운 대국(大國) 관계를 형성해 미·중(美中) 중심의 국제 질서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중국이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 양축(兩軸)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겠다면 '형식적인 균형 외교'의 틀에 갇혀 한반도의 긴장 원인을 헛짚어서는 안 된다. 중국은 북한의 핵 도발에 쐐기를 박아 동북아 평화를 지키는 데 실질적 역할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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