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을 자연과학의 언어로 설명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문제는 자연과학 울타리 바깥의 대중은 그 언어를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 최재천(59) 이화여대 교수는 과학을 문학의 언어로 풀며 그 견고하고 난해한 담장을 넘은 사람이다. 대중의 과학화, 그의 표현을 빌리면 '과학의 대중화'다. 사실 동물행동학이나 사회생물학에서 그 못지않게 노력하고 연구하는 학자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더 성과를 거둔 학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궁금했다. 중학생 시절부터 시인으로 불린 이 문청(文靑) 출신 자연과학자의 문재(文才)가, 지금 최재천의 학문적 권위와 위상을 만드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면 편견일까. 그는 이 대목을 어떤 식으로 자각하고 있을까.

―실력은 더 있지만, 글을 잘 쓰지 못해 지명도가 낮은 다른 과학자들이 '불공정 게임'이라 질투하지는 않나(웃음).

"질투해도 직접 얘기를 하지 않으시니 잘 모른다(웃음). 한국이 주빈국이었던 2005년 프랑크푸르트 북페어에서 내가 강연을 한 적이 있다. 그때 강연 제목이 '글 잘 쓰는 과학자가 성공한다'였다. 고백 하나 할까? 우리나라는 과학잡지 '네이처'(Nature)나 '사이언스'(Science)에 논문이 소개되면 종종 신문 1면에 소개되는 나라 아닌가. 나는 '네이처'에 3번이나 떨어졌다."

―어떤 논문을 제출했길래.

"어려운 과학잡지라는 통념과 달리, '네이처'는 가정집으로 배달되는 잡지다. 그래서 힘이 막강한거다. 내가 개미 연구를 전문으로 하지 않나. 내 논문 중에, 여왕개미가 다른 종(種)의 개미들과 살림을 차려서 천하를 평정하는 내용이 있다. 재미있다고 생각해 논문을 보냈는데, '네이처' 편집장이 '우리 독자는 관심 없을 것 같다'고 답장을 보낸 거다. 씩씩거리고 있는데, 동료가 뭐라고 제목을 지었는지 물었다. 그때 제목이 '개미의 종간(種間) 협동과…' 뭐, 이런 거였다. 동료가 웃으면서 그러더라. '야, 그러면 누가 읽나, '개미 세계의 베네통', 최소한 이런 식으로 붙였어야지!'"(여러 종의 개미가 협동을 했듯, 베네통 광고는 다양한 인종을 등장시켜 광고를 한 적이 있다).

서울 연희동 집에서 이화여대 연구실까지, 최재천 교수는 걸어서 출퇴근한다. 빠른 걸음으로 35분. 그 35분 동안 최 교수는 연희동의 골목길을, 연세대 안의 숲을, 이화여대의 나무들을 만끽한다.

동일한 실험, 동일한 데이터의 논문이라면 관건은 글솜씨에 있다. 결국 한 사람을 깊게 설득하기 위해서도, 또 보다 많은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서도 핵심은 언어. 그는 미국 MIT(매사추세츠공대) 학생들은 의무적으로 글쓰기 수업과 훈련을 받는다고 했다. 최 교수는 "과학은 어려운 내용을 전달하기 때문에 글솜씨가 더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다"면서 "비슷한 방향의 논문이라면 누구 글솜씨가 더 훌륭하냐에 따라 우수 학술지 게재 여부가 결정된다"고 했다.

이날 최 교수는 또 새로운 학문적 트렌드를 포착하는 자신만의 팁 하나를 소개했다.

―'최재천 스타일'이 있다는데.

"외국 출장 가면 좋아하는 일이 서점에 가는 거다. 하루 시간을 내서 큰 책방에 간다. 책방에서 제목만 쭉 훑어보는 일을 십몇 년 했다. 예를 들어 생물학 코너, 인류학 코너에 가서 제목만 주르륵 읽는다. 십몇 년 하다 보니 책 제목만 죽 읽어도 이 학문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대략 보인다. 6개월 간격을 두고 다시 서점에 가면, 모두 원래 있던 제목들인데 새로운 게 하나 보일 때가 있다. 그러면 꺼내 읽어보고, 좋으면 산다. 뭔가 흐름이 잡히는 거다."

―구체적으로 예를 든다면.

"한 10년 전에 갔더니 바이오미미크리(Biomimicry)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어, 뭐지? 하고 들춰봤는데 재미있더라. '자연을 닮자, 배우자' 정도의 내용인데, 우리말로 하면 '생체 모방'이다. 그 책을 산 뒤 서점에 갈 때마다 비슷한 주제의 책이 나오나 살폈다. 상당히 오랫동안 별 진전이 없었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부터 한 해에 3~4권씩 나오더니 그 이듬해에는 10권 정도가 쏟아지더라고. 뭔 일이 있겠다 싶어서 학교에 관련 연구소를 만들었다. 이화여대 의생학(疑生學) 연구센터가 그것이다. 그런데 정말 터졌다. 하버드대에서 뒤늦게 연구소를 만든 거다. 개인의 기부를 받아 차렸는데, 기부에 달린 유일한 꼬리표는 '자연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우리 생활에 응용해 달라'는 것이었다. 하버드 개인 기부액 중에 역대 최고액이라고 들었다. 내가 하버드에 있는 동료들에게 농담삼아 그랬다. 그 연구비 나한테 와야 하는데 너희가 왜 가로챘냐?(웃음)"

새로운 트렌드를 포착하는 그만의 스타일도 스타일이지만, 그는 명명(命名)과 호명(呼名)에 능하다. 바이오미미크리를 우리말로 한 '의생학'도 그렇지만, "함께사는 인간·공감하는 인간"의 의미로 명명한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 그와 마치 연관 검색어처럼 떠오르는 '통섭' 등이 그 사례다. 어떤 학문 분야에서 새로운 용어를 만드는 것, 그리고 이를 선점하고 유통시키는 행위의 의미와 효과를 명확히 알고 있는 것일까. 그는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72)의 밈(meme·모방자, 선전자) 개념을 꺼냈다.

―명명과 호명의 효과는.

"유전자(Gene)가 시간을 거쳐 세대 간에 형질을 전파하는 것이라면 밈(meme)은 같은 세대 내에서 탁월한 형질을 전파하는 메커니즘이다.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장대익 교수는 그래서 '통섭'이 대단히 성공적인 '밈(모방자, 선전자)'이었다고 평가한다. 싸이의 말춤도 정말 성공한 밈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쉽게 쥘 수 있는(영어로는 bite-sized) 말을 만드는 것은 대단히 성공적인 전략이다."

아이러니 하나. 우연히 참가한 학교 백일장에서 장원을 차지한 이후, 고교생 최재천은 단 한 번도 문과 이외의 진학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당시는 이과를 가는 것이 서울대 진학에 유리하던 시절. 교장 선생님은 거의 강제로 소년 최재천을 이과로 배정했다. 강하게 저항했지만 불가항력이었고, 그는 서울대 동물학과에 합격했다.

최재천이 사랑하는 시 중에 로버트 프로스트(1874~1963)의 '담을 고치며'(Mending the Wall)가 있다. "좋은 담이 좋은 이웃을 만든다"는 프로스트의 시구를, 이 문학적 자연과학자는 "학문 간의 낮은 담장이 지식의 교류와 통섭을 만든다"라고 확장해서 읽는다. 학문과 생활 사이의 차이를 줄이려 노력하고, 학문과 학문 사이의 담을 낮추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삶. 그가 생각하는 통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