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모씨가 지난해 8월 수원 여대생 성폭행 사건으로 세상을 떠난 딸에게 안부 문자를 카카오톡으로 보냈다. 지난 2일에 이어 9일에도 보냈으나 딸은 당연히 답장이 없다.

"잘 지내니? 딸, 보고 싶다…."

지난 2일 진모(51)씨는 딸의 카카오톡 아이디로 메시지를 보냈다. 답은 없었다. 일주일 뒤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봄이다. 날씨가 많이 따뜻하다. 바람도 쐬고 그러지?" 역시 딸은 답이 없었다.

진씨는 지난해 8월 경기 수원시에서 발생한 여대생 성폭행 사망사건 피해 여성(당시 21세)의 아버지다. 진씨의 딸은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같이 일하던 고모(28)씨, 고씨의 후배 신모(25)씨와 술을 마셨다. 이날 고씨와 신씨는 진씨의 딸을 성폭행하고 모텔에 방치했다. 진씨의 딸은 깨어나지 못하고 일주일 만에 병원에서 숨졌다.

"1심 재판에서 내 딸을 성폭행한 놈들은 법정 오른쪽 피고인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검사님이 '왜 피해 여성을 집으로 데려다 주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제가 집을 모르지 않습니까'라며 실실 웃고 있더군요. 검사님도 화가 나서 '어찌 됐든 젊은 여성이 죽었는데 미안하지도 않으냐'고 소리쳤죠."

14일 오후 진모씨가 서울고법 건물 앞에서 경희대생들의 탄원서를 읽다가 오열하고 있 다. 진씨는 지난해 8월 수원시에서 발생한 성폭행 사망 여대생의 아버지이다.

1심에서 고씨는 12년, 박씨는 10년 징역형을 각각 선고받고 항소했다. 14일 서울고법에서 고씨와 신씨의 항소심 첫 공판이 열렸다. 방청석에서 공판을 지켜본 아버지 진씨는 연신 눈물을 흘렸다. 진씨는 "나는 평생을 감옥 생활하듯 지옥에서 살게 됐는데 범인들은 '억울하다'며 항소하고 재판부에 반성문까지 제출해 감형을 받으려 하고 있다"면서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못 들어봤는데…"라며 억울한 심정을 토로했다.

진씨는 딸이 사망한 뒤 개명(改名) 신청을 해 이름을 바꿨다. "예전 이름으로 살 때 딸이 그런 사고를 당했잖아요. 또 언론에서 제 이름을 다 아는데, 하나 남은 아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이름을 바꿨어도 딸의 처참한 죽음을 잊을 수는 없었다. 딸이 숨진 뒤 진씨는 매일 소주 한두 병을 먹어야 잠들 수 있다. "꿈에서 딸을 봤는데, 햇빛이 환히 비치는 데서 팔짝팔짝 뛰어다니더라고요. 그런데 요즘은 꿈에도 잘 찾아오지를 않아요. 바쁜지…." 그는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어머니 임모(48)씨는 사건 이후 집 밖에 제대로 나가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며칠 전 갑자기 집 밖으로 사라졌다. 진씨는 딸의 납골당에서 부인을 찾았다. "혹시나 싶어 납골당에 가봤더니 애 엄마가 거기 서서 하염없이 울고 있더군요."

진씨의 아들 역시 여동생을 잃은 충격에 빠졌다. 슬픔보다 분노가 컸다. 그는 지난달 24일 온라인 커뮤니티 '다음'에 '작년 8월 28일 수원 여대생 성폭행 사건 피해자의 오빠입니다'라는 글을 올려 "우리 가족은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고 있는데, 범인들은 뻔뻔하게 항소했다. 일분일초라도 감형되는 걸 도저히 두고 볼 수 없다"며 울분을 토했다. 그의 글에 공감해 온라인 서명을 한 사람은 14일 현재 13만8000여명이다. 아들이 다니는 경희대 학생 1460명은 6~13일 범인들의 엄벌을 요청하는 탄원서에 서명해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진씨는 항소심 첫 공판을 지켜본 후 "제가 딸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요. 이렇게 탄원서나 내고 다니는 것밖에…. 마음 같아서는 못할 일이 없지만…"이라고 했다. 그는 봄 햇살을 등지며 고개를 떨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