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명 정치부 기자

토머스 도닐런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2일(현지 시각 11일) 뉴욕에서 열린 비영리 재단 아시아소사이어티의 회의에 참석해 "서울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하고 막 돌아왔다"며 "제가 있는 동안 박 대통령이 워싱턴을 방문해 달라는 오바마 대통령의 초대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저는 오늘 박 대통령을 5월 백악관에서 맞기를 고대하고 있다고 발표(announce)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당국자가 박 대통령의 첫 순방 일정을 '발표'한 것이다. 장소는 백악관 브리핑룸이 아닌 민간 회의장이었지만, 백악관은 그 발언을 보도자료 형태로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청와대는 뒤늦게 "5월 상순 방미를 염두에 두고 한·미 간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공개한 일정을 따라가는 모양새가 됐다. 정상회담 일정은 당사국간의 모든 조율이 끝난 후 공표 일시를 합의해 같은 날 발표하는 것이 외교 관례다. 한·미 양국은 아직 정상회담 날짜를 확정하지 않았고 테이블에 올릴 의제도 논의가 제대로 안 된 상태인데 어색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한국이 이런 일을 당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취임 첫해인 2008년 여름, 한·미 양국은 부시 대통령의 8월 5~6일 방한과 양국 정상회담에 합의했다. 그런데 7월 2일 데니스 와일더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이 미국 기자들과의 브리핑에서 먼저 그 사실을 언급하고, 백악관이 해당 발언을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청와대는 몇 시간 후 정상회담 일정을 공식 발표하면서 "와일더 보좌관의 단순 실수로 일방적 발표가 이뤄졌고, 미국 측이 유감을 표명했다"고 밝혔다.

이번 상황은 더 심한 외교 결례다. 그런데도 미국이 유감을 표명했다는 얘기도 없고, 우리 정부가 항의했다는 얘기도 들리지 않는다. 박근혜 청와대가 말하던 '당당한 외교'는 어디 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