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5일 서울 노원구에 사는 정복순(여·48)씨는 집 근처에서 한 30대 여성에게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건넸다. 인사를 받은 여성은 뒷걸음질을 치더니 인상을 쓰며 정씨를 피해갔다. 한 40대 남성은 정씨의 인사를 받고 "무슨 일이세요"라고 물었다. 간혹 인사를 받아주는 사람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정씨를 '이상한 사람' 취급했다.

서울 노원구는 전국 처음으로 지난달 14일부터 22일까지 마을 인사 실태 조사를 벌였다. 정씨는 조사에 참여한 자원봉사자다. 조사원 38명이 주택가, 아파트 단지, 마을버스 등에 파견돼 이웃들 간에 인사가 얼마나 잘 이뤄지는지 알아봤다. 조사원들은 마치 마을 이웃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도록 교육을 받았다. 혹시 여성들이 위협을 느낄 수 있어 조사원들은 거의 여성들로 모았다.

조사 결과, 노원구 주택가, 아파트 엘리베이터, 마을버스에서 조사원과 인사를 한 주민은 100명 중 32명꼴(32.4%)이었다. 세 명 중 한 명만 인사를 나눈 꼴이었다.

인사를 해도 받아주지 않는 주민들로 인해 조사원들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신경희(여·47)씨는 지난달 14일 오전 월계3동 다세대주택 골목에서 한 30대 여성에게 "안녕하세요" 하고 웃는 표정으로 인사했다. 인사를 받은 한 40대 주민은 뒤를 둘러보더니 신씨에게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냥 지나쳤다. 그렇게 신씨가 30분 정도 10여 명에게 인사를 해도 받아주지 않자 인사하는 목소리도 기어들어갔다. 신씨는 "혼자서만 인사하는 내가 부끄러워 더 이상 조사를 진행하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나마 또 다른 조사 장소인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선 사정이 나았다. 조사원 남미정(44)씨는 14일 오후 노원구 월계3동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70대 할머니한테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할머니는 웃으면서 머리를 숙여 답례했다. 할머니는 "요즘 아파트에선 누가 사는 줄도 모르는데 인사를 해줘서 반갑다"는 말까지 건넸다. 그날 만난 초등학생 5명에게 인사를 건넸을 때에도 모두 "안녕하세요"라며 고개를 숙였다. 남씨는 "장소가 좁고 둘만 있다 보니 인사를 서로 나누기가 쉬웠다"고 말했다.

현장 조사 장소 중에 인사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아파트 엘리베이터로 47%가 인사를 나눴다. 다음으로는 일반 주택가가 19%, 마을버스가 17%로 나타났다.

주민들이 아파트에 살면서 평소 자주 만나는 경비원에게는 얼마나 인사를 할까? 노원구 조사 결과 경비원과 눈이 마주쳤을 때 인사하는 주민 비율은 40.1%였다. 경비원이 먼저 인사를 하고 나서야 인사를 하는 비율은 80%로, 나머지는 경비원이 하는 인사조차도 받아주지 않았다.

주민 7883명을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는 노원구가 벌인 '안녕하세요'라는 인사 캠페인의 한 행사로 진행됐다. 김성환 노원구청장은 "인사는 마을 공동체 복원의 첫걸음"이라며 "통·반장과 마을 각종 단체가 나서서 먼저 인사하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