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호근(58)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가왕(歌王) 조용필이 다음 달 내는 새 앨범에 작사가로 데뷔한다. 직장에서 잘린 50대 가장이 저녁 무렵 집으로 향하는 모습을 노래한 '어느 날 귀로에서'다.
'돌아오는 그 길에 외롭게 핀 하얀 꽃들/어두워진 그 길에 외롭게 선 가로등이/빛나는 기억들 울렁이던 젊음은 그곳에 두고 떠나야 하네/내 푸른 청춘의 골짜기에는 아직 꿈이 가득해 아쉬운데/귀로를 맴도는 못다 한 사랑 만날 수는 없지만 이제는 알 것 같은데'
버림받은 울분을 쏟아내기보다 아쉬움에 서러워하는 중년이다. 후렴은 더 아련하다. '내 푸른 청춘의 골짜기에는 아직 꿈이 가득해 아쉬운데/나는 왜 귀로를 맴돌고 있나 아직 꿈이 가득해 그 자리에/나는 왜 귀로를 서성거리나 돌이킬 순 없지만 이제는 알 것 같은데'
송 교수가 작사가로 나선 사연은 이렇다. 6년 전부터 그는 조용필과 막역한 술친구 사이다. ‘그는 뭇사람의 고해성사를 들어주는 성직자 같은 가수’라며 팬을 자처한 칼럼을 쓴 게 계기가 됐다. 며칠 후 운전 중 전화를 받았다. “저, 조용필인데요.” 1차로를 달리고 있던 송 교수는 깜짝 놀라 도로 가에 차를 대고도 한참을 두근거렸다고 한다. 그 후 한 달에도 몇 번씩 서로 집을 오가며 마음을 터놓는 사이가 됐다.
작년 12월 대통령 선거로 마음이 복잡하던 즈음, 조용필이 새 앨범에 수록할 곡이라며 악보를 건네줬다. 며칠 후 녹음하니 빨리 가사를 써달라는 ‘요구’였다. “악보도 볼 줄 모르는데 어떻게 쓰느냐”며 사양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조용필은 자신이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CD까지 건넸다.
기세에 눌린 송 교수는 그 CD를 100번쯤 들었다고 했다. 마침 베이비부머의 쓸쓸한 퇴장을 담은 자전적 에세이 ‘그들은 소리 내 울지 않는다’를 막 탈고한 차였다. 닷새가 지나자 50대 가장의 쓸쓸한 귀갓길이 떠올랐다. 단숨에 써내려갔다. 영국에 녹음하러 간 조용필에게 이메일로 보내곤 잊었다. 얼마 후 녹음이 끝났다며 노래를 보내왔다. “역시 조용필 형이더라고요. 과장하지 않고 담담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데, 더 슬퍼요.”
송 교수의 스마트폰에는 조용필 노래만 150곡쯤 담겨 있다. 노래 한 자락 불러야 하면 무조건 ‘조용필’이다. 조용필과도 자주 노래를 불렀는데, “그 노래, 정말 내가 부른 게 맞는가”할 만큼 가수 본인도 잊은 노래까지 술술 부른다. 송 교수는 조용필의 노래에는 시대를 꿰뚫는 사회학적 통찰이 담겨 있다고 했다. 1991년 조용필이 작곡·작사·편곡한 ‘꿈’이 그렇다고 했다.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왔네/그곳은 춥고도 험한 곳/여기저기 헤매다 초라한 문턱에서/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올라온 시골 청년의 슬픔을 담은 노래다. 이번 노래는 그 청년의 20여년 후 인생인 셈이다. 신이 나서 그런 얘기를 했더니 조용필은 심드렁하게 답했다고 한다. “송 교수, 나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