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강연장을 찾아다니며 자녀 교육법을 배우는 학부모가 많다. 전문가의 강연을 듣다 보면 그들의 머릿속엔 몇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옳은 말이긴 한데 실천할 수 있을까?’ ‘저 사람들은 과연 자기 말대로 아이를 키울까?’ 때마침 교육계에서 이름난 전문가 3인이 올해 일제히 자녀를 대학에 입학시켰다. 맛있는공부는 ‘수험생 학부모’로서 이들이 자신의 자녀에게 적용해 온 교육 원칙을 각각 취재했다.

(왼쪽부터)안인숙씨, 강미선·박재원 소장.

☞ case1   안인숙('매일 지문 3개씩 푸는 비문학' 저자)

"자신에게 맞는 공부법 찾아가는 아이 믿어줘야"

"아이가 원하지 않는 건 안 시키려 노력했어요. 대신 '부모에게 널 잡아주지 않았다고 원망하지 말고 원하는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하라'고 했죠." '매3비(매일 지문 3개씩 푸는 비문학)' 저자 안인숙씨의 딸 송서희씨는 지난달 대원외국어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중·고교 시절을 통틀어 서희씨가 교과 학원에 다닌 기간은 영어 2개월, 수학 1개월, 논술 2개월이 전부다.

"아이가 워낙 학원 다니는 걸 싫어했어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만 해도 몇 곳에 보냈는데 하루는 아이 아빠가 저와 서희를 부르더니 '다니는 학원의 종류와 수강료, 만족도를 적어보라'고 하는 거예요. 수강료가 제일 싼 피아노의 만족도가 가장 높더군요. 그때부터 학원을 일체 끊고 주말마다 인형극 공연장과 박물관, 미술관 등을 찾아다녔습니다."

서희씨는 선행학습을 포기하는 대신 그날 배운 걸 완벽하게 소화하는 방식으로 공부했다. 안씨는 "겪어보니 아이가 자신에게 맞는 공부법을 찾는 것, 부모가 그런 아이를 믿어주는 것 두 가지가 제일 중요하더라"고 말했다. "사실 전 '불량 엄마'였어요. 아이가 초등 6학년 때 학원 운영을 시작했거든요.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죠. 외국어고 입시를 앞두고 생활기록부를 봤는데 전교 1등을 도맡아 하던 아이가 장래 희망을 '주부'라고 써놨더라고요. 일하는 엄마가 싫었던 거예요."

이후 안씨는 학원 운영을 접고 온전한 주부로 되돌아갔다. 매일 아침 아이를 등교시켰고 밤엔 독서실로 아이를 데리러 갔다. "하루 평균 40분가량 아이와 함께하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 게 큰 도움이 됐어요. 많은 학부모가 '정보'에 목말라 하지만 아이 공부에 도움 되는 건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case2   강미선 스콜라스교육연구소장

"변치 않는 교육 철학 지녀야 중심 잡을 수 있어"

강미선 스콜라스교육연구소장('수학은 밥이다'〈스콜라스〉 저자)은 최근 딸 김서로(이화외국어고 졸)씨를 이화여대 사회과학부에 진학시켰다. 그는 여느 수험생 엄마보다 비교적 수월하게 지난 3년을 보냈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엄격하게 지켜 온 몇 가지 원칙 덕분이었다.

첫째 원칙은 아이가 고 3 때 학습 역량을 100% 발휘할 수 있도록 완급을 조절한 것이었다.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대학 입시 공부는 마지막 1년이 가장 중요하더라고요. 이 시기 학습량을 '100'으로 놓고 아래 학년으로 갈수록 학습량을 줄였죠. 그렇게 하면 초등생 땐 공부할 게 거의 없다는 계산이 나와요."

'초등학교 땐 국어, 중학교 땐 영어, 고교 땐 수학' 하는 식으로 시기별 '공략 과목'도 정했다. 강 소장은 "주요 과목 3개를 한꺼번에 잡으려 하면 고 3이 돼서도 세 과목 모두 취약해 허덕일 수 있다"며 "중학교 때까지 국어와 영어를 정복하고 나니 고등학교 진학 후엔 수학에만 집중할 수 있더라"고 귀띔했다.

강 소장은 딸의 중학교 시기를 '진로 탐색 기간'으로 활용했다. 덕분에 서로씨는 중학교 3년 내내 서울시청소년미디어센터 기자단 활동을 비롯해 △서울시 글로벌 리더 프로그램 참가 △스리랑카 해외 봉사 활동 △판소리 배우기 등 다양한 비교과 활동을 체험할 수 있었다. 이 같은 이력은 고교 진학 후 국제앰네스티·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활동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됐다. 강 소장은 "영어 학원에 4년 정도 보낸 것 빼곤 학습 관련 학원에 아이를 보낸 기억이 없다"며 "그렇게 아낀 학원비는 고스란히 체험학습과 여행 등에 투자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명색이 '수학교육 전문가'이지만 한 번도 딸에게 "수학을 잘해야 한다"고 강요한 적이 없다. 딸의 적성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서로는 전형적인 문과 체질이에요. 그래서 늘 '우리 아이에게 맞는 교육법'을 고민했죠. 그 결과가 수학 동화 쓰기나 요리 수학 등과 같이 수학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방식이었고요. 시대가 바뀌면 교육법도 달라지게 마련이지만 그것과 관계 없이 엄마라면 변치 않는 교육 철학 하나쯤은 있어야 해요. 전 그걸 '(아이 적성에 맞는)진로'로 잡았죠. 그래야 학원이나 주변 엄마들 얘기에 휘둘리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습니다."

☞case3   박재원 비상교육 공부연구소장

"자녀의 시행착오 지켜보며 '자생력' 갖도록 도와"

박재원 비상교육 공부연구소장은 올해 딸 슬지(경기 성남 수내고 졸)씨를 숙명여대 테슬(TESL) 전공에 보냈다. 숙명여대 테슬 전공은 4년 중 1년을 해외 대학에서 수학할 수 있는 '영어 특화 학과'다. 그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성적 부담을 주지 않으려 애써 왔다. 아이들이 '성공한' 수험생이 아니라 '행복한' 수험생이 되길 바랐기 때문.

박 소장의 교육 원칙은 '부모의 생각을 전하되, 선택은 아이 몫으로 남긴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음악적 재능을 타고난 슬지씨에게 피아노와 작곡을 가르쳤다. 한때 예술고에 진학시킬 생각도 했지만 아이 뜻에 따라 일반계 고교에 보냈다. 아이돌 팬클럽 활동 등 여느 부모라면 질색했을 아이 취향도 인정해줬다.

입시 문제를 본격적으로 고민한 건 슬지씨가 고 2 무렵부터였다. "음악을 전공할 생각이 없다고 하더군요. '새로운 진로를 찾고 그에 맞춰 입시를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겠다' 싶어 고 2 1학기를 마친 후 미국 국무부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가시켰어요. 귀국 후에도 아이 뜻에 따라 3학년 2학기로 복학, 곧바로 대입 준비를 시작하게 했죠."

슬지씨는 본래 영어특기자 전형을 노렸다. 혼자 힘으로 토플(TOEFL) 등을 준비했지만 1·2점 차로 목표 점수를 얻지 못했다. 박 소장은 딸의 시행착오를 지켜보며 생각이 많았지만 끝내 자신이 나서진 않았다. "딸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야 자생력을 기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 슬지씨는 결국 논술 전형으로 숙명여대에 합격했다.

박 소장은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을 '인간 대 인간'의 관계로 대하려 노력한다. 자녀와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도 늘 대화를 통해 합의점에 이른다. "제 아이들은 저나 아내가 권하는 건 무조건 반항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일단 따릅니다. 그렇게 하고 난 후 자신이 내리는 결정에 대해 부모가 존중해줄 거란 확신이 있거든요. 어떤 경우에도 아이를 믿고 인정해주는 것, 그게 부모와 자녀 모두 행복해지는 지름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