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참, 오늘 우리 영덕 대게 먹으러 가야 되는데….", "여기까지 오셨는데 어쩌겠어. 빨리빨리 취재하고 영덕으로 날아가자고."

24일 오후 충남 공주 정안천변. 600m쯤 되는 아스팔트 활주로 한쪽 끝 허름한 천막에 10여명의 중·장년이 모여 앉아 난롯불을 쬐며 활짝 웃는다. 천막 옆으로는 10여대의 알록달록하고 아담한 경비행기가 늘어서 있다. 공주 경비행기 클럽 회원들이다. 40·50대인 이들의 직업은 과수원 사장, 수퍼마켓 사장, 대덕연구단지 연구원, 어린이집 이사장, 군청 공무원, 약사 등으로 제각각. 그러나 주말이면 무작정 이곳으로 뛰쳐나오는 '비행가장(飛行家長)'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 클럽의 전체 회원 수는 50여명이다.

"취재를 나왔으면 비행기부터 타봐야지." 갑작스러운 제안에 얼떨떨해하는 사이 흥덕군청 공무원이라는 양창석(57)씨가 기자의 손을 잡아끌었다. 경비행기의 8m쯤 되는 날개 가운데 2명이 간신히 들어갈 만한 작은 좌석에 몸을 밀어 넣으니 살짝 공포감이 스쳤다. 5분간의 엔진 예열을 거치더니 비행기가 활주로 위를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비행기는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순간 맨몸으로 허공에 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기체가 작기 때문에 느껴지는 현상이었다. 순식간에 500m 상공으로 날아오른 비행기는 공주 시내, 무령왕릉, 공주산성 위를 10여분간 선회했다. 조종간을 가볍게 왼쪽으로 꺾으며 페달을 밟자 순간적으로 기체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몸도 함께 중심을 잃었다. 얕은 비명을 질렀지만 짜릿한 쾌감이 몰려왔다. 주조종사인 양씨가 웃으며 말했다. "신나지 않아요? 비행기와 내 몸이 하나가 된 거잖아요. 이 느낌 때문에 비행기 조종에 빠져드는 거지. 하하."

지난달 말 충남 공주 정안천변 활주로에서 경비행기 앞에 모여 있는 공주 경비행기 클럽 회원들.

우리나라에는 이런 경비행기 클럽이 안산·화성·단양·문경·충주·여주·담양·하동 등 전국 각지에 산재해 있다. 대한스포츠항공협회에 따르면 국내에 경비행기는 총 250여대쯤 있으며, 경비행기 조종사 자격증을 보유한 사람은 2000여명쯤으로 추산된다. 20시간 동안 정식 교관에게 비행 교육을 받으면 경비행기 조종사 자격증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일단 자격증을 따면 자기 비행기가 없어도 비행클럽에서 15만~20만원의 돈을 내고 경비행기를 운전할 수 있다. 이날 공주를 같이 찾아간 대한스포츠항공협회 양회곤 사무처장은 "경비행기 가격이 중고로 싸게 살 경우 2000만~5000만원쯤하고 신형일 경우 1억~2억원쯤 한다"며 "관심이 높고 경력이 쌓인 사람들은 자기 비행기를 장만하기도 하지만 자격증을 딴 상태에서 클럽 소유 경비행기를 빌려서 조종하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사실 빌려서 경비행기를 탄다고 하면 골프보다 비용이 적게 드는 취미가 경비행기 조종이에요."

이 클럽 회원인 김선웅(40)씨는 "저나 다른 회원들이나 경비행기 운전에 빠진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파일럿에 대한 꿈이 있었던 사람들"이라며 "하늘 위에서 드넓게 펼쳐진 바다와 높게 솟아오른 산봉우리들을 한눈에 조망하면 가슴이 뻥 뚫리는 듯 후련하다"고 했다. 그는 "회원 중 상당수는 리모트 컨트롤 비행기에도 심취해 있다"고도 덧붙였다.

회원 50여명 중 20여명은 주말마다 이곳을 찾는 골수파. 경비행기를 함께 타고 편대 비행을 하며 전국 각지의 명소를 하늘에서 구경하고 유명 식당을 찾아가 별미(別味) 기행을 하는 게 기본 일정이다. 주무정(56)씨는 "다른 지역에 가면 그곳 동호회원들과 함께 회식을 하며 비행과 비행기에 대한 최신 정보를 나누기 때문에 친해질 수밖에 없다"며 "물론 우리 회원끼리는 어지간한 형제보다 더 자주 만나니까 가족 같은 사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비행에 빠져 있는 가장들에 대한 가족의 불만은 없을까? 회원들은 "솔직히 주말에 자주 집을 비우니까 아내와 아이들이 아쉬워할 때도 많다"며 "하지만 가끔 가족을 태우고 비행을 하면서 잃었던 점수를 만회한다"고 했다. 그러나 주무정씨는 "아내를 한번 옆자리에 태우고 비행한 적이 있었는데 멀미가 심해서 그런지 다시는 탈 생각을 안 한다"며 웃었다.

이들은 사회봉사 활동에도 관심이 많다. 가장 중요한 건 산불·환경 감시다. 이 클럽 교관으로 있는 이준호(52)씨는 "비행을 하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천 상태를 알려주기 위해 200장 이상 사진 촬영을 해서 환경부에 제공한다"며 "이를 바탕으로 당국에서 녹조 현상이 심하거나 기름띠가 있는 곳을 파악해 조치를 취하곤 한다"고 했다. 자영업을 하는 차인준(43)씨는 비행 경력이 오래돼 주말이면 이곳에서 교관 '부업'을 하고 있었다. "비행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안전이죠. 이·착륙시에는 아무리 경력이 오래된 사람이라도 거듭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초보자들은 조종간을 잡을 때 너무 힘이 들어가는 게 문제지요." 가볍고 부드럽게 조종간을 잡고 리듬을 잘 타서 조종해야 한다. 자기 능력을 벗어나는 묘기에 대한 욕심을 부리려고 하면 절대 안 된다. 기준이 되는 속도와 고도도 잘 유지해야 한다. "안전 수칙만 잘 지키고 조금만 익숙해지면 자가용 모는 것보다 쉽게 즐길 수 있는 게 바로 경비행기 조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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