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훈 기자

'여자 5명 신년 모임이고 7만5000원 정도로 홍대 부근에서 편하게 술 마실 수 있는 곳 찾습니다.'지난달, 친구들과 모임 장소를 구하던 이은지(29)씨는 한 스마트폰 앱을 통해 원하는 식당 조건을 올렸다. 곧바로 5~6개 식당에서 메시지가 왔다.

식당들은 '탕수육 한 그릇 서비스하겠습니다' '조용한 방 준비하겠습니다' '모든 메뉴를 20% 할인해드리겠습니다' 등 이씨를 붙잡으려고 각종 '혜택'을 제시했다. 이씨와 친구들은 메시지 내용을 비교하고, 35%를 할인해 주겠다는 갈비찜 집에서 모임을 가졌다.

소셜 커머스의 뒤를 이은 이른바 '흥정 커머스'가 요식업계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여러 구매자를 상대로 거래가 이뤄지는 소셜 커머스와 달리 흥정 커머스는 개개인에 맞춰 서비스를 제공한다.

구매자가 원하는 식당 위치와 예산, 분위기 등을 인터넷에 올리면 부근 식당 주인들에게 일괄적으로 메시지가 전송되고 조건에 맞는 주인들이 흥정을 붙인다. 지난해 12월 약 200개 가맹점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시작한 흥정 커머스 업체 '유아킹'은 두 달 새 이용자 수가 1만5000명을 넘어섰다.

흥정 커머스는 일종의 역경매(reverse auction) 방식으로 상품을 판매한다. 구매자끼리 경쟁하는 일반 경매와 달리 역경매는 판매자들이 경쟁하기 때문에 가격이 점점 내려간다. 흥정 커머스 '좋은데'의 하동수(38) 이사는 "거래가 판매자 중심에서 구매자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소비자가 이리저리 돌아다니지 않아도 원하는 가격에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최저가 상품이 낙찰되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는 흥정 커머스를 통해 자기의 요구 조건을 충족하는 '맞춤형' 상품을 찾을 수 있다.

'유아킹' 한석균 팀장은 "'아이와 함께여서 전석 금연인 식당을 찾는다' '메뉴는 상관없지만 조용히 얘기 나누고 싶다' '부서 회식이라 25명이 한꺼번에 들어가는 방을 찾는다' 등 다양한 요구 사항이 매일 100건 넘게 올라온다"고 했다. 그는 "주로 수십 명 이상 회식할 장소를 찾는 흥정이 자주 올라온다"고 말했다.

흥정 커머스가 요식업 분야에서 인기를 끌자, 업체들은 다른 분야로 흥정 커머스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좋은데'는 부동산이나 중고차, 렌터카, 유흥업소 등을 대상으로 가맹점을 모집해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 구매를 원하는 중고차 종류와 색상, 변속 장치 종류와 연료를 입력하면 흥정이 들어오는 식이다.

서울대 경영학과 송인성 교수는 "현대의 소비자들은 원하는 상품이 불명확한 경우가 많고 특정 상품을 지정하기보다는 다양한 제안을 받길 원한다"며 "흥정 커머스는 상호작용을 통해 구매자에게 여러 상품에 대한 정보를 제안함으로써 욕구를 충족해준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