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화장실 갈 새도 없이 환자를 진료했던 치과 의사는, 점심 시간이면 샌드위치 하나 사 들고 서울 인사동 화랑가를 돌며 고단함을 달랬다. 갑갑할 때마다 한 점, 두 점 그림을 사 모은 것이 40여년. 어느덧 200여점 미술품을 소장한 '컬렉터'가 된 그가 그 중 40여점으로 전시회를 연다.

31일부터 다음달 6일까지 서울 강남구 신사동 예화랑에서 '마음속의 천국:어느 컬렉터의 이야기'를 여는 이명숙(69·사진)씨. 30일 전시장에서 만난 이씨는 "나 혼자만 보던 이 아름다운 작품들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는 기쁨을 누리고 싶었다"고 했다.

이씨에게 그림이란 '모태 신앙' 같은 것이었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을 역임한 이준(94) 화백이 그의 아버지다. 그는 "아버지 손톱 밑엔 언제나 물감이 묻어 있었고, 물감 냄새는 내게 곧 아빠 냄새여서, 내 삶의 가장 향기로운 냄새였다"고 했다. 그가 처음 구입한 그림은 돌담의 이끼를 형상화한 남관(南寬)의 1965년작 '고훈(古薰)'. "연세대 치대 강사로 일하던 1970년대 중반 남관 선생님 개인전에서 '출품작 중 가장 좋아하시는 게 뭐냐'고 여쭤봤어요. 선생님이 '저거'라고 하신 바로 그 작품을 1년치 봉급을 털어 샀습니다."

장샤오강의 2006년작‘빅 패밀리(Big Family)’.

이후 그는 국내외 작가 가리지 않고 수집했다. 수집의 기준은 '마음에 와닿고, 계속 눈길이 가는 것'. 아버지 이준 화백 작품도 몇 점 갖고 있지만, 아버지에게도 작품값을 지불한다. "아버지께서 '얘야, 에노구(��の具·물감) 값은 주고 가야지' 하셔서 '가족 특가'로 사요."(웃음)

이번 소장품전에 권옥연의 '소녀'(연도 미상), 이청운의 '몽마르트르의 지붕'(1987), 장 샤오강의 'Big Family'(2006), 데미안 허스트의 판화 '신의 사랑을 위해'(2007) 등을 내놓은 이명숙씨는 "사람은 배신하지만, 그림은 배신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나를 더 좋아해주는 것이 바로 그림"이라고 했다. (02)542-5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