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 가짓수만 3000개가 넘는다는 요즘 대입 수시모집에서 가장 중요한 반영 요소는 '내신'이다. 입학사정관 전형 합격생조차 "활동 내역이 아무리 다양해도 내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합격하기 어렵다"고 말할 정도. 실제로 서울 중·상위권 대학 수시 합격자의 평균 내신 성적은 2.5등급 선으로 꽤 높다. 그렇다면 내신이 나쁜 학생은 일찌감치 좋은 대학 가길 포기해야 할까? 올해 수시모집에서 3등급 이하 내신으로 목표 대학에 합격한 세 학생에게서 '나만의 입시 공략 비기(秘技)'를 들었다.

◇구민성ㅣ경희대 사학과 합격

경희대 네오르네상스 전형에 합격한 구민성(서울 동북고 3년)군의 고교 3년 평균 내신 성적은 3.3등급이다. 그의 합격 비결은 확고한 진로(문화 관련 기업 CEO)와 다양한 전공 관련 비교과 활동. 구군은 동북고 동아리 '지하철 2호선 문화유산답사반'에 들어가고 싶어 동북고 진학을 결심했을 정도로 중학교 때부터 역사·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지하철 2호선…'은 월 1회 지하철 2호선을 타고 북아현동 골목길 등 서울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문화유산을 답사하는 동아리. 구군은 그 밖에도 △교내 경제 동아리 △NGO(에티오피아 그린 프로젝트) △동북모의국회 창단 등 분야를 막론하고 다채로운 교내 활동을 펼쳤다.

구군의 비교과 활동을 더욱 빛내준 건 2년간 작성한 세 권의 '자기성찰노트'였다. 각각 '나의 꿈' '나의 마음' '나의 역사'로 명명된 노트엔 △관심 분야·인물 기사 스크랩과 사업 아이디어 메모 △자작시와 편지 △본인에게 의미 있는 일과가 담겼다. "고 1 후반, 성적이 전교 200등까지 떨어졌을 무렵 노트를 쓰기 시작했어요. 저 자신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가진 거죠. 덕분에 진로가 더욱 확실해졌어요. '다른 건 몰라도 문화·역사만큼은 1등급'이란 자신감도 생겼고요."

고 3이던 지난해 봄, 그는 노트 내용을 토대로 A4 복사용지 1매에 고교 3년간의 활동 내역을 하나의 표로 완성했다. 그 중 특히 자신에게 유의미했던 활동을 골라 포트폴리오도 만들었다. '지하철 2호선…' 답사 후기 작성 당시 '문화 관광 마일리지 앱' 등의 사업 아이템을 구상했던 기록으로 '창의적 사고력'을 증명하는 식이었다. 포트폴리오엔 내신성적 변화 추이 그래프도 첨가됐다. 1학년 말까지 하락세이던 성적이 2학년 때 자기성찰노트 작성과 동시에 오르기 시작, 3학년 1학기 중간고사 땐 전교 상위 10%까지 반등한 과정을 보여준 것. 구군은 "중위권 학생이라도 자기 성찰 시간을 가지며 자신의 관심 분야를 분명히 알면 대입 결과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왼쪽부터) 구민성군, 김민아·윤은비양.

◇김민아ㅣ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합격

서울시립대 UOS포텐셜 전형에 합격한 김민아(19·서울 구일고 3년)양 역시 전공과 관련된 비교과 활동을 인정받아 합격한 사례다. 특히 거주지인 서울시 주관 활동에 꾸준히 참여해 온 점을 높게 평가받아 '고교 3년 평균 3.48등급'의 내신 불리를 극복할 수 있었다. 실제로 글로벌 리더 양성 프로그램, 국제교류 기획 캠프 등 김양이 중학교 때부터 참여해 온 비교과 활동의 90% 이상은 서울시립청소년문화교류센터와 연계돼 있다. 서울시교육청 주최 C40 모의정상회의에도 2년 연속 참가했다. 지난해 5월엔 서울시민상(청소년 글로벌 리더십 부문)도 받았다.

그는 "(관심 분야였던)국제교류 관련 활동은 규모를 막론하고 꾸준히 참여했다"고 말했다. "한 번은 싱가포르 교육부 담당자가 학교를 방문했어요. 당시 제가 직접 학교 안내를 맡아 그쪽 일행과 '싱가포르와 우리나라 교육의 차이점'에 대해 토론을 벌였죠. 관할(구로)구청이 모집한 '외국인 여행객 홈스테이 가정 선정' 프로그램에 자원해 프랑스인 여행객 가이드를 맡기도 했고요."

김양은 6회로 한정된 수시 지원 기회를 100% 입학사정관 전형에 할애했다. 물론 입학사정관 전형에서도 내신은 만만찮은 걸림돌이었다. "면접 때 내신 관련 질문이 나왔어요. 전공 관련 과목인 영어·중국어 성적이 좋은 건 다행이었지만 사회 성적은 나쁜 편이었거든요. 면접관에게 '비록 교과 성적은 나쁘지만 매일 뉴스와 신문을 보며 국제 이슈에 관심을 가져왔다'는 점을 피력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비교과 활동 실적을 경쟁 요소로 삼을 때 가장 중요한 건 '진정성'이다. "전공 관련 비교과 활동을 제대로 하려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요. 단지 '입시'만 겨냥한 활동은 시간 낭비에 불과하죠. 전 고교 3년 내내 행복해 하면서 비교과 활동을 즐겼어요. 관심 분야에서 진심을 담아 활동하지 않았다면 아마 합격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윤은비ㅣ동국대 수학교육과 합격

동국대 두드림특성화 전형에 합격한 윤은비(19·경기 평택 한광여고 3년)양은 남다른 봉사활동 실적으로 입학사정관 전형을 뚫었다. 그의 3년 평균 내신 성적은 3.32등급. 하지만 그는 '비교과활동 실적으로 내신 불리를 뒤집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고교 입학 무렵, 중학생 때부터 참여해 온 교육봉사 단체가 없어졌어요. 이후 평택시외국인문화센터를 찾아가 '다문화 가정 자녀 대상 교육 봉사'를 시작했죠. 시작 인원은 저 혼자였지만 이내 친구 한두 명이 합세했고 교내 봉사 동아리로까지 발전했어요. 지금은 이웃 남학교인 한광고와 연합해 200여 명 규모의 대형 동아리로 성장했죠."

그는 교내 동아리 '한광선플누리단'에서도 3년 내내 활동했다. 활동 분야를 오프라인으로 확대해 '친구에게 칭찬·격려 편지 쓰기' 등의 활동도 펼쳤다. 초등 5학년 때 취득한 '아마추어 무선사 자격증'을 활용, 중학교 때부터 무선통신(HAM)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미아 찾기' 봉사 활동을 꾸준히 해온 점도 이색적이다. 그는 이 같은 경력 덕분에 △대한민국 중고등학생 자원봉사대회 금·은상 △한국청소년리더십센터 주니어리더상 등의 수상 실적도 거뒀다.

두드림특성화 전형 지원 당시 윤양은 △봉사정신 △학업우수성 △세계화·국제화 △자기주도·창의성 △리더십 등 5개 항목에서 잠재력을 보여야 했다. 하지만 그간 해 온 봉사활동 내역만으로도 학업우수성을 제외한 나머지 4개 항목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었다. 학업우수성 부문에선 수학 교과 우수상 등 교내 수상 실적이 증빙 자료 역할을 했다. "내신이 낮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어요. 해가 갈수록 기회는 많아지고 있거든요. 당장 세 살 위인 친언니가 대학 입시를 치를 때만 해도 입학사정관 전형에서도 성적이 당락을 갈랐으니까요. 확고한 꿈을 갖고 노력한다면 목표는 반드시 이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