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핵심 쟁점이 된 '특정업무경비'가 향후 정부 고위직 인사 때마다 되풀이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정업무경비를 국가 예산 지침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하지 않고 이 후보자처럼 개인 돈과 섞어서 사용해온 사람이 적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차제에 국회가 이 문제에 대한 정리 작업에 나서야 하고,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헌재·대법원·감사원'모두 비슷?'

지난 22일 이 후보자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헌법재판소 김혜영 사무관(경리 담당)은 "특정업무경비는 수표로 드리고, 사용 내역은 매달 한 번씩 비서실을 통해 받아 캐비닛에 보관하고 있지만 증빙 서류 내용이나 금액 등을 맞춰보지는 않았다"고 했다. 김 사무관은 다른 재판관도 같은 방식으로 처리했고, 전임자와 업무를 인수인계할 때도 같은 방식이었다는 취지의 말도 했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23일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사진은 이 후보자가 22일 국회 인사청문회에 출석, 청문위원들에게 인사한 뒤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이다.

다른 헌법재판관은 이 후보자와 달리 개인 계좌에 넣지 않고 별도 계좌를 만들어 재판관실 운영에 썼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특정업무경비 처리 문제는 앞으로 헌재소장 청문회 때 또 나올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헌법재판소장으로 추천될 만한 경력의 재판관 상당수는 특정업무경비를 받아 사용해 왔을 공산이 크다.

이는 헌재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대법원의 대법관이나 감사원의 감사위원 등 헌법상 독립기관들이 특히 문제 될 소지가 있다. 국회의 의장·부의장, 상임위원장들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향후 대법관·헌법재판관·감사위원 출신들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있을 경우 특정업무경비 사용 현황이 '체크리스트 1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반 행정부처나 검·경의 경우 고위직에는 특정업무경비가 지급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묻혀 있던 지뢰가 터진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국회 "이대로 끝날 문제 아니다"

인사청문특위 새누리당 간사인 권성동 의원은 "특정업무경비 증빙 서류 첨부 문제를 국회에서 통제토록 하는 것은 앞으로 국회에서 헌법재판소, 대법원, 감사원 고위 관계자와 협의해서 정리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민주당 박기춘 원내대표는 "만약 이 후보자가 낙마하는 등 이런 사건이 쌓일수록 공무원 사회가 각성하게 될 것"이라며 "특정업무경비는 앞으로 비슷한 경우가 계속 나올 가능성이 있는 만큼 국회 차원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3일 열린 국회 법사위에서도 같은 말들이 나왔다. 그러나 국회의원들도 특정업무경비를 쓰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헌법재판소, 대법원 등 독립 기관에 대한 감시 기능이 거의 없었다는 게 문제인 것 같다"고 했고,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감사원이 대법원·헌재 등 힘 있는 기관은 제대로 감사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정연정 배재대 교수는 "헌재·대법원 등 일부 기관만 80년대식 낡은 권위주의 행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며 "다른 정부부처가 하는 것처럼 업무경비를 법인카드로 쓰게 하고 반드시 영수증 처리를 하게 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