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 연구소인 보건사회연구원은 암·뇌혈관·심혈관·희귀 질환 등 4대 중증(重症) 질환 진료비를 국가가 모두 책임지겠다는 새누리당 대선 공약을 이행하는 데 2014~2017년 4년 동안 새누리당이 당초 예상한 6조원보다 16조원 가까이 더 많은 21조8600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했다. 보사연은 4대 중증 질환 무료(無料) 진료와 기초연금 도입, 기초생활보장 확대 등 보건·복지 분야 3대 공약을 실천하는 데 필요한 재정은 77조5000억으로 새누리당이 추계한 34조5000억원의 두 배가 넘을 것으로 봤다.

박근혜 당선인은 대선 과정에서 '국민 행복 10대 공약'을 비롯해 20개 분야에서 모두 201개 약속을 내놨다. 이 공약들을 모두 실현하는 데 5년간 135조원이 들어가고, 그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세출 구조조정을 통해 71조원, 비과세·감면 축소 등으로 48조원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보사연의 분석이 보여주듯이 새누리당의 복지 비용 추계에 구멍이 많다. 새누리당은 2010년에 4대 질환 진료비 중 환자와 가족이 부담한 비급여(非給與) 진료비가 1조5000억원이라는 점을 근거로 계산했지만 비급여 진료비가 해마다 19%씩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사실을 보지 못했다. 정부 지출을 줄여서 재원 71조원을 조달하겠다는 방안도 현실을 몰라서 우기는 소리다. 새누리당 내에서 공약을 수정하거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 당선인은 대선 과정에서 여러 차례 "국민과 한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새 정부가 시작되기도 전에 "공약을 다 지킬 수는 없다"고 입을 떼는 게 부담스러울 수는 있다. 김용준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17일 "대선 공약에 대해 지키지 말아라, 폐기하라, 공약을 모두 지키면 나라 형편이 어려워진다고 주장하는 것은 국민을 혼란케 하고, 국민에 대한 도리도 아니다"고 한 것은 당선인의 이런 의향(意向)을 반영한 말일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 후보 또는 당선인 입장을 대통령에 취임하고서도 그대로 밀고 가다간 큰일을 만날 수도 있다. 그렇게 되고 나서 일부 공약을 폐기하거나 수정하는 건 국민을 더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다. 개별 공약에 매달리기보다는 최근 정부 조직 개편 때 밝혔듯이 '국민 행복' '국민 안전' '경제 부흥' 같은 큰 목표에 집중하는 것이 사태를 그르치지 않는 방법이다. 대선 공약 이행에 들어가는 비용을 다시 계산해보고, 시급성(時急性)을 따져 당장 해야 할 일과 천천히 해도 되는 일을 가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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