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얼마 전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재미있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거의 동시에 들어오는 문자들이 너무나 극(極)과 극이었기 때문이다. "천만다행입니다"라는 문자가 오는가 하면, "멘붕 상태, 이민 가야겠어요"라는 문자도 연달아 도착했다.

정치에 큰 관심이 없을뿐더러, 100년 후에 대한민국이 살아남으려면 정치적 구호보다 실력 중심의 철저한 준비가 더 절실하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왜 인간은 항상 '우리'와 '그들'로 나누려는 것일까? 고대 로마공화국에선 원로원이 보수파인 옵티마테스(Optimates·벌족파)와 그락쿠스의 개혁을 지지하는 포풀라레스(Populares·민중파)로 분열됐다. 비잔틴 제국에선 전차(戰車) 경기의 기수(騎手) 제복 색에서 기원한 녹색파 대 청색파, 초기 기독교에선 삼위일체 대 단성론자, 산업혁명 후부터는 좌파 대 우파…. 그렇게 그들은 항상 '악(惡)'이고 우리는 항상 '선(善)'이었다. 그러곤 결국 "그들이 죽어야만 우리가 살 수 있다"라는 논리로 끝나곤 했다.

영장류 중 하나인 인간은 대부분 사회적 집단에서 생활한다. 영장류들의 집단 크기는 뇌 크기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뇌가 클수록 집단의 크기도 커진다는 걸 알 수 있다. 옥스퍼드대 로빈 던바 교수는 침팬지·고릴라 같은 야생 영장류의 집단 구성원 숫자와 인간 뇌 크기(약 1.5㎏)를 기반으로 분석해서 '야생 인간'의 생물학적 집단 구성원 수는 약 150명이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인간 뇌가 기억하고, 관계를 가지고, 같은 편으로 인식할 수 있는 다른 인간의 숫자는 겨우 150명 안팎이라는 것이다.

영장류의 뇌 크기(x축)와 사회 구성원 숫자(y축) 간엔 확실한 상관관계가 있다.

사회성 동물 집단에선 대부분 구성원이 유전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원시 인간 집단 역시 약 150명의 유전적 친척들로 구성됐을 것이란 가설을 세워볼 수 있다. 진화심리학에선 유전적으로 가까울수록 서로 더 이타적인 행동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엄마와 아이 사이(50% 유전자 공유)가 조부모와 손자 사이(25% 공유)보다 가깝고, 어느 문화에서도 어머니의 어머니(외할머니)가 손자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베푼다.

결국 인간 뇌 안엔 '우리=유전적 동지' '타인=유전적 경쟁자'라는 프로그램이 깊게 새겨져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150명이 아니라 5000만명과 함께 살고 있다. 수학적으론 5000만명 사이에 유전적 밀접도란 의미 없는 개념이다. 하지만 뇌는 여전히 원시시대에 사는 듯 끝없이 외모·행동·취향 등을 통해 서로를 구별하고 유전적 밀접도를 추론해내려 한다. 시간과 자원이 한정된 세상에서 5000만명이 공동체를 만든다면 확률적으로 당연히 서로가 다른 선호도를 가지게 된다. 우리와 다른 선호도를 가진 사람들과 논리적으로 경쟁하려면 우리는 먼저 나와 다른 사람은 유전적 경쟁자이기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원시시대적인 뇌에 불복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