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일본의 재무장을 주장하는 개헌 세력이 전후 처음으로 개헌 가능 의석(의석의 3분의 2)을 확보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자민당 총재는 17일 기자회견에서 중의원에 이어 내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도 개헌 가능 의석을 확보해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엄격한 개헌요건 때문에 전쟁을 금지한 헌법 개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일본의 오랜 정치 상식'이 허물어진 것이다.

◇개헌 지지 세력 중의원의 76%

이번 총선 결과를 보면 일본 정치 지형은 완전히 달라졌다. 자민당(294석), 일본유신회(54석), 우리모두의 당(18석) 등 개헌을 통해 재무장을 주장하는 정당이 전체 480석의 76%인 366석을 획득했다. 반면 민주당은 57석에 그쳐 군소 정당으로 추락했다. 공산당(8석)·사민당(2석) 등 전통적인 호헌(護憲) 정당은 존폐 위기에 처했다. 이 의석들을 모두 합해도 자민당 등 개헌 세력에 대한 견제 역할을 하기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번 총선 결과가 나오기 전 자민당의 과반 의석 확보는 이미 예측됐다. 그렇다 하더라도 참의원(상원) 242석 중 자민당 의석이 82석에 불과해 당장 개헌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다. 또 자민당이 헌법 개정 등 극우 공약을 실행하다가 역풍을 맞을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 등 개헌 세력이 3분의 2 이상 의석을 확보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일본 국민이 장기적인 경기 침체, 중국과의 영토 분쟁, 중도파의 무능을 겪으면서 급격히 우경화돼 평화헌법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 사회가 개헌을 향한 본격 시동을 걸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내년 참의원 선거, 개헌 세력 선전할 수도

내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 등 개헌 세력이 3분의 2 이상 의석을 확보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란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내년 7월 이후의 일본은 지금의 일본과는 완전히 다른 일본이 될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중국과의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은 자민당의 국방군 도입 공약이 일본 유권자들 사이에서 호소력을 발휘하게 한 중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중국 침략에 대비해야 한다"는 극우파들의 주장이 일반국민 속에 파고든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핵이 없으면 국제사회에서 발언권도 없다"며 '핵무기 시뮬레이션'을 주장한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쿄도지사가 이끄는 일본유신회도 비례대표 의석에서 40석을 획득해 민주당(30석)을 압도했다.

◇"정당 역할 못하면 극단 세력 득세"

이번 총선 투표율은 전후 사상 최저인 59.32%로 2009년 선거보다 10%포인트 가까이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자민당은 2009년 민주당에 참패했던 당시와 큰 차가 없는 20% 수준의 정당 지지율로도 압승했다. 정치 무관심과 민주당 등 이른바 리버럴 세력에 대한 극단적 불신의 덕을 본 셈이다. 호소야 유이치(細谷雄一) 게이오대 교수는 요미우리(讀賣)신문 기고를 통해 "현재 일본은 1930년대 대공황기에 기존 정당들이 제대로 정책을 펴지 못한 결과 극좌·극우 정당들이 득세해 결국 나치즘으로 치닫던 독일과 비슷한 상황으로 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