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숙 KDI 연구위원

어떤 전쟁은 이미지로 기억된다. 배 13척을 울돌목에 띄워놓고 수백 척 적군(敵軍)을 기다리는 이순신이나 코끼리 부대를 끌고 눈 덮인 알프스를 넘는 한니발의 비장함 앞에 말로 된 분석은 뭐든 사족(蛇足)이 되고 만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정반대이다. 27년간 지루하게 계속된 전쟁은 극적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지만 전 세계의 대학 초년생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느라 밤을 밝힌다. 2500년 전 역사책이 현재에 던지는 의미심장함 때문이다.

아테네의 장군이었던 저자 투키디데스는 신흥 강국으로 떠오른 아테네가 기존 강국 스파르타에 불러일으킨 두려움이 전쟁의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새로운 힘이 부상하고 기존 세력이 이를 두려워할 때 형성되는 소용돌이가 주변을 집어삼키는 '투키디데스의 덫(Thucydides's trap)'이다. 신흥 강국 독일의 호전성과 기존 강국 영국의 대응은 1914년과 1939년의 두 차례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하버드대학 앨리슨 교수에 따르면 서기 1500년 이후 세계지도상 힘의 축(軸)이 이동했던 15번 중 11번이 전쟁으로 귀결됐다.

지금 투키디데스가 다시 회자한다. 올 초 시진핑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과 미국은 과거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글로벌 경제 속에서는 기존 강국 미국과 부상하는 중국이 상호 존중하고 협력하는 '신형 대국 관계'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미국이 '아시아로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이라는 기치 아래 중국을 배제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를 추진하고, 중국은 미국을 배제한 '역내(域內)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진행하는 등 양국의 상호 견제는 더 치열해지고 있다. 이들이 오래된 덫을 슬기롭게 피해갈 수 있을지를 세계는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주변국들은 어느 한쪽에 붙을 것을 강요받았고 결국 살상(殺傷)과 파괴로 치달았다. 우리는 지금 미국에 이어 중국과 FTA를 협상하고 있다. 나라 크기와 교역 규모가 어지간한 국가 중 두 나라 모두와 FTA를 맺는 것은 우리가 처음이다. 체결이 안 될지도,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들에게 우리가 중요한 존재임은 틀림없다. 더구나 이제 우리는 강대국이 결정해주는 운명을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보다 나름의 영향력으로 공존의 길을 찾는 데 기여하겠다는 신호를 바깥 세계에 보내고 있다.

문제는 그 신호가 과연 먹힐 수 있을지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영향력을 갖기 위해서는 우리가 내실을 가져야 한다. 우리 자신 잘 먹고 잘살아야 존중받는 것이다. 근래 우리가 제대로 대접받게 된 것은 지난 50년간 경제 발전의 결과이지만, 그 위상이 유지될지는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달렸다. 그리고 국가 위상의 기본 잣대는 경제가 가진 경쟁력이다. 지난 수백년간 인류 문명의 꽃이라 자부했던 유럽이 암울함에 빠진 것은 독일 등 일부를 제외한 주요국이 경쟁력을 상실한 데다 이를 재건하기 위한 구조 개혁을 이루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이 나라들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다. 지금이 한국 역사의 꼭짓점이자 기나긴 쇠락의 시작점이 될 가능성이 커지는데도 만연한 안이함이 성찰과 모색을 차단하고 있다. 고성장 시대의 성장 동력이 꺼져가고 고령화가 본격화하는데 정작 절실한 구조 개혁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 대선 정국은 온통 표심(票心) 낚기로 채워졌다. 칼날 같은 경쟁 환경과 긴장이 고조되는 정치 환경을 돌파하기 위해 스스로를 어떻게 단련할지에 대한 계획이 없으니 대선 주자들이 유권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며 살갑게 굴수록 더 불안하다.

구조 개혁에 왕도(王道)는 없다. 노동시장과 상품·서비스 시장의 경직성을 완화하여 재능과 자본이 움직이는 걸 돕고 경쟁 장벽을 없애는 것이 최우선이다. 다음은 인적 자본과 기술 기반에 투자하고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는 것이다. 경제의 적응력이 유연함에서 나오는 이상 복지와 경제정책은 약자를 보호하되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을지라도 구조조정을 촉진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구조 개혁 구상이 없는 복지 확대 약속이나 고용 규제를 강화해 경직성을 심화시켜 잘살 수 있다는 공약은 무책임보다 무지에 가깝다. 나라는 변방을 벗어난 지 오래인데, 대선 후보들은 세계와 격리돼 있는 것이다.

오래도록 한반도는 대륙에 달린 작은 땅덩어리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돌아서 눈을 들면 반도는 대양의 시작이며 대륙의 입구이다. 우리 국민은 이미 멀리 바라볼 능력을 갖추었으니 이에 걸맞은 지도자가 선출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혹여 그렇지 않다면 더 나은 내일을 향해 지도자를 인도하는 국민이 되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