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학봉 도쿄 특파원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50년의 세계'라는 책을 통해 일본이 전 세계 GDP(국민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010년 5.8%에서 2050년 1.9%로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1인당 GDP는 한국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예측도 나왔다.

일본 몰락론의 근거는 기술 경쟁력이나 근로 의욕의 하락이 아니다. 일본은 2011년 1억2700여만명인 인구가 2050년 9700여만명으로 감소한다. 고령화율이 23%에서 40%까지 상승하고 평균 연령이 52.3세로 높아진다. 일할 젊은이는 급감하는데 도움을 받아야 할 은퇴자가 급증하는 노인대국(老人大國)화에 따른 것이다. 20년 경기 침체, 재정 적자의 급증도 고령화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이 큰 원인이다.

그런 일본에서는 최근 정치적 리더십 부재로 자멸할 것이라는 '일본의 자살'이라는 논문이 화제이다. 1970년대 출판됐던 이 논문은 지금 상황을 정확하게 예언했다는 이유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오는 16일 총선이 다가오지만, 인구 감소 등 위기의 본질에 대해선 논쟁조차 없다. 정치 지도자들은 19세기로 시계를 거꾸로 돌려놓은 듯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차기 총리로 유력한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와 제3세력으로 떠오른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쿄지사,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 등은 헌법 개정, 군대 보유, 애국 교육 등을 주창하고 있다.

부국강병(富國强兵)은 선동적 구호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군대를 만들어도 군에 갈 젊은이가 없고 공장을 지어도 근로자를 구할 수 없는 게 일본의 미래이다. 아베 총재는 '강한 국토'를 만들겠다며 10년간 200조엔을 투자, 고속도로 등 토목공사를 하겠다고 공약했다. 인구 감소로 곰과 다람쥐가 뛰어노는 도로가 속출하는 현실에는 눈감았다.

일본은 인구 감소를 막기 위해 출산 확대 등 다양한 정책을 펼쳤지만 모두 실패했다. 개방적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 외국인과 함께 사는 방법 외에는 대책이 없는데도 '외국인 혐오증' '배외주의(排外主義)'가 강해지고 있다. 중국인과 한국인이 일자리를 뺏을 것이며 '안전·안심(安全·安心)'의 일본 사회를 범죄로 물들일 것이라는 주장이 만연하고 있다. 중국 영사관 건설 계획에 대해 "동네가 차이나타운화해서 범죄가 늘어날 것"이라며 반대 운동을 벌인다. 일본에서 태어나 평생 세금을 낸 재일교포의 소액 정치헌금을 받은 것이 장관 사퇴의 이유가 됐다. 일본 국적의 재일교포 3세인 소프트뱅크 손정의 사장은 허리케인 피해를 당한 미국에 50만달러를 기부했다가 일부 네티즌으로부터 '매국노(賣國奴)'라는 공격을 받았다.

내부의 위기를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을 외부에서 적(敵)을 만들어 전가하려는 일부 정치 지도자들의 선동(煽動)이 일반 시민에게 전염됐다는 증거이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처럼 싸구려 술(극단적 내셔널리즘)에 취해 소동을 벌이면 잠시 현실을 망각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현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정치 지도자의 선동은 선거 때 득표(得票)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국가의 미래를 좀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