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 style="text-align:center"><span style="padding: 0 5px 0 0;"><a href=http://www.yes24.com/24/goods/8078393?CategoryNumber=001001017001007001&pid=10671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chosun.com/books/200811/buy_0528.gif width=60 height=20 border=0></a></span><

불한당들의 미국사
새디어스 러셀 지음|이정진 옮김
까치|488쪽|2만5000원

파스칼은 '팡세'에서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짧았더라도 세상사가 달라졌을 것'이라 했다. 파스칼이 역사에서 '우연성'을 중시했다면, '역사의 동인'을 다른 데서 찾는 사람들도 많다. 역사 해석은 결국 어떤 키워드를 '동인'으로 삼는가에 따라 각양각색이 된다.

저자는 이전까지 역사의 무대에서 조연, 혹은 엑스트라에 불과했던 이들을 클로즈업한다. 그것도 방탕한 술꾼과 게으른 노예, 이민자와 매춘부 등 하나같이 '불량' 시민들이다. 주류 규범에서 벗어나 있었던 이들이 세상에 새로운 쾌락을 도입하고 자유를 확대했으며 사회를 좀 더 살 만한 곳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 미국판 '하류인생' 공로사다.

◇인종·계급 평등의 온상은 술집

청교도의 나라 미국도 처음엔 '타락과 방종, 패악'이 넘쳤다. 독립전쟁이 한창이던 1777년 4월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인 존 애덤스(1735~1826)는 이렇게 토로한다. "실은 기근과 전염병, 그리고 검보다 더 무서운 적이 하나 있네. 너무나 많은 미국인의 마음에 만연한 타락, 즉 성적 방종을 말하는 것인데…."

독립의 거점인 필라델피아에만 인구 100명당 술집이 1개꼴이었다. 신문은 "노동자들은 매일 낮에 맥주를 마시고 밤이면 월급의 반을 럼주를 마시는 데 허비한다"고 썼다.

재즈 트럼펫을 연주하는 모습. 재즈는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범죄 조직인 마피아들이 운영하는 클럽에서 싹을 틔웠다.

하지만 이런 술집과 유흥가야말로 '시민 해방'과 인종 평등의 산실이었다.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이곳에서흑백과 이민자들이 한데 어울렸다. 성(性)혁명도 여기서 비롯했다. 미국사에서 독립전쟁 전후만큼 인구당 사생아 수가 많았던 적이 없었다. 당국은 술꾼들을 '절주 감옥(Sober House)'에 가뒀지만 음주와 매춘은 도시·시장의 확대와 더불어 늘어만 갔다. 이 모든 것은 갈수록 경직성을 더해갔을 미국의 청교도 문화에 자유와 해방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심었다.

◇세계를 석권한 흑인의 놀이문화

건국의 주역들은 노동과 근면을 독려하기 바빴다. 하지만 정작 많은 백인이 '일보다 삶의 즐거움'을 앞세우는 흑인들의 삶을 곁눈질했다. 청교도 윤리에 묶인 백인 농장주들에 비해 노예들의 놀이는 과격하면서 관능적이고 자유로웠다. 백인이 얼굴을 검게 칠하고 흑인 춤과 노래를 따라 하는 '민스트럴 쇼(minstrel show)'가 도시마다 인기였다.

'휴가' 개념도 노예들이 선구였다. 이들은 일하기 싫으면 숲으로 도망가서 한두 주 후에 돌아오곤 했다. 통계에 따르면 북부의 농부들은 노예들보다 연평균 400시간 더 일했다.

백인 청년들은 거리낌없는 흑인 문화에 홀렸다. 앨런 긴즈버그 같은 비트족(Beats) 작가군은 백인 중산층 청년이 흑인 문화를 통해 비로소 소외감을 이겨내는 작품을 썼다. 노예 해방 후 흑인들은 도시로 가 재즈와 블루스를 연주했다. 주류 문화에 길들지 않았던 흑인 음악이 결국엔 백인문화와 세계를 평정했다.

◇불량한 이민자, 갱스터들의 공로

다양한 이민자들도 태만과 반항의 문화를 신대륙에 이식했다. 1876년 뉴욕타임스 사설은 "이탈리아인들은 미국인들보다 더 게으르고, 더 많은 험담을 늘어놓고, 속임수에 능하다"고 우려했지만 '억압적인' 금주령을 무너뜨린 주역이 이탈리아계 갱스터들이었다. 이들의 주류 밀매업 덕에 시민들은 삶의 애환을 달랬다.

재즈가 처음 연주된 곳도 시칠리아 이민자 폭력조직의 클럽이었다. 알 카포네는 가난한 연주자를 도왔고, 여기서 루이 암스트롱 같은 귀재가 나왔다. 현대 대중예술의 본산인 브로드웨이, 라스베이거스도 모두 조직범죄 큰손들의 초기 투자에서 싹텄다. 당시 값싸고 선정적이며 폭력적인 '불법' 영화를 제작·배포했던 회사들이 오늘날 세계 엔터테인먼트계의 '메이저'인 MGM, 유니버설, 파라마운트, 20세기폭스, 워너브러더스로 컸다.

◇여성해방의 기원 매춘부

미국 최초의 '신여성'도 매춘부라면 믿어질까. 이들은 재력가와의 결혼이 유일한 성공의 길이었던 시대에, '불량한 샛길'을 통해 자력으로 삶을 개척했다. 남성 노동자로 붐비는 개척 도시에서 억척같이 부를 쌓았다. 성적 터부는 물론 사회적 금기가 이들 손에 무너졌다. 오늘날 화장·패션산업의 길을 닦은 것도 이들이었다. 훗날 대통령 부인들도 따라 한 단발 웨이브 헤어스타일도 실은 사창가에서 시작됐다. 직장의료보험이 도입되기 몇십 년 전, 마담들은 자기 수하 여성들에게 무상의료를 제공했다. 공공의료 개념이다. 이 중 '큰손들'은 신도시의 관개·도로건설 계획에 자금을 대거나 공교육제도 도입에도 일조했다.

이쯤 되면 미국사는 온통 'B급 인생들의 행진'인가도 싶다. 저자는 서둘러 선을 긋는다. "이 책의 영웅들이 사회를 장악했다면 그 사회는 지옥으로 갔을 것"이라고. 그 반대편 '사회질서 수호자' 역시 나름의 핵심적인 사회 기능인 안전·안보·공공위생 제공 같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추가한다. 다만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의 폭이 이 '두 세력 간 투쟁'에 의해 결정되었다고 결론짓는다.

위대한 영웅전, 심각한 계급투쟁류의 역사책에 식상한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야를 열어 보이는 책. 루스벨트의 뉴딜 시대를 나치의 국가사회주의와 비교하는 등 제도권 사가들의 시비를 부를 대목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일반독자들에게는 '불량식품' 같은 맛과 즐거움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