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끼리의 범죄가 심상치 않다. 부동산이나 보험 사기, 마약, 성매매 등 탈북자가 연루된 사건이 잇따르고 있고 탈북자들만 노린, 탈북자에 의한 범죄까지 벌어지고 있다. 국내 탈북자는 해마다 늘어나 연말엔 2만5000명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탈북자 등치는 탈북자들

8년 전 북한을 탈출해 부산에 정착한 김모씨는 지난 4월 다른 탈북자로부터 투자 권유를 받았다. 중국 광시성 부동산 개발 사업에 동참하면 원금 보장은 물론이고 다른 투자자를 데려오면 떼돈을 벌 수 있다는 것. 북한과 중국 국경을 넘는 과정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동지'의 제안이라 크게 의심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씨는 그동안 안 먹고 안 쓰고 모은 3000만원을 건넸다. 부동산 개발을 빙자한 다단계 사기극이었지만 김씨는 너무도 쉽게 속아 넘어갔다.

탈북 여성들이 일하는 퇴폐 업소가 있는 경기도의 한 유흥가. 경찰에 따르면 탈북 여성을 둔 다방·노래방·마사지 업소가 꾸준히 늘고 있다.

최근 부산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탈북자 155명으로부터 50억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로 국내 총책 이모(43)씨를 구속하고 홍모(44)씨 등 모집책 15명을 입건했다. 이씨와 홍씨도 탈북자다. 이들은 중국 광시성에 근거지를 두고 피라미드 사기 행각을 벌이고 있는 사기단 총책 조선족 이모(51)씨와 공모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 등은 탈북자들에게 중국 광시성 난닝시의 대규모 부동산 개발 사업에 직접 3000만원을 투자하고 다른 투자자를 유치해오면 수당을 받게 돼 몇 달 새 수억원도 벌 수 있다고 속였다.

이들은 투자자를 직접 난닝시에 데려가 엉뚱한 건설 현장을 둘러보게 하거나, 현지에서 현금을 쌓아놓고 수당을 나눠주는 장면을 담은 영상을 보여주는 수법을 썼다. 투자자들이 전 재산을 날린 반면 이들의 돈을 가로챈 이씨 등은 고급 외제 승용차를 굴리고 다니는 등 남한의 어엿한 기업인으로 살았다고 한다.

탈북자로부터 마약류인 필로폰을 구입해 투약하다 적발된 탈북자 일가족도 있었다. 부천 소사경찰서는 최근 부부·사촌 사이인 탈북자 6명에 대해 경기도 화성의 자택 등에서 필로폰을 나눠 투약한 혐의로 재판에 넘기고 마약 공급책으로 알려진 탈북자의 행방을 쫓고 있다.

보험 사기극은 탈북자라면 한 번쯤은 유혹을 당한 적이 있을 만한 고전적 범죄 수법이다. 지난 7월엔 탈북자 27명이 한꺼번에 적발된 사건이 생겼다. 이들은 한국에 들어오기 전 병력(病歷)과 사고 기록이 없기 때문에 보험에 가입하기 쉽다는 점을 악용했다고 한다. 한 탈북자는 무직인 남편과 자신, 딸의 명의로 12개의 보험에 가입한 뒤 번갈아가면서 병원에 입원하는 수법으로 4년간 1억4000만원을 타냈다.

◇성매매 늘어나는 탈북 여성들

수년 전부터 기승을 부리고 있는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한 탈북자도 많다. 김모(23)씨는 중국에 기반을 둔 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 국내 피해자들이 입금한 돈을 인출해 중국으로 인출하다 적발됐다. 수사 기관에선 더 많은 탈북자가 중국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65개의 환치기 계좌를 이용해 중국에 2500억원을 송금한 혐의(외국환거래법 위반)로 최근 평택 세관에 적발된 40대도 탈북자였다. 중국을 무대로 한 범죄에 탈북자들이 많이 이용되는 것이다. 일부 탈북자는 위조지폐를 만들다 구속됐고, 인터넷에 스마트폰을 싸게 판다고 속이고 돈만 받아 챙긴 탈북 청소년 2명도 두 달 전 검거됐다.

탈북 여성의 성매매도 사회 이슈가 되고 있다. 실제로 경기도 일대엔 젊은 탈북 여성들이 탈북자나 조선족이 운영하는 다방과 노래방에서 일하면서 성매매에 나서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탈북 여성을 둔 퇴폐 마사지 업소에 대한 적발이 늘어나고 있다"면서 "일부 탈북 여성은 자신을 조선족이라고 소개하는 경우가 많아 드러나지 않은 성매매 탈북 여성의 수는 훨씬 많을 것"이라고 했다. 일부 탈북 여성은 목돈을 마련하기 위해 3개월 일정으로 일본에 원정 성매매를 다녀오기도 한다. 탈북 여성이 일하는 퇴폐 업소가 소개된 인터넷 사이트도 있다.

◇대부분 극빈층 전락 범죄 유혹에 취약

한국형사정책연구원과 경찰대 부설 치안정책연구소 등에 따르면, 1998년부터 2007년 1월까지 전체 탈북자 8885명 가운데 10%에 해당하는 899명이 범죄를 저질렀다. 한국사회 전체 평균 범죄율인 4.3%의 2배 이상이다.

탈북자가 범죄 피해를 볼 확률도 국내 평균치보다 5배나 높았다. 범죄를 저지를 확률과 당할 확률이 모두 높다는 것이다. 탈북 여성의 경우 남한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30% 이상이 성매매 권유를 받았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탈북자들이 범죄에 취약한 이유는 대부분이 우리 사회의 '밑바닥 층'으로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이 올해 1월 탈북자 8299명에 대한 생활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세 명 중 한 명꼴로 월평균 소득이 100만원을 밑도는 등 전체 80%의 월평균 소득이 150만원 이하로 조사됐다. 대졸 신입사원 급여와 비슷한 월소득 301만원 이상을 버는 탈북자는 단 2%. 실업률도 12%로 전체 국민 실업률 3.7%의 3.3배 이상이었다.

새누리당 조명철 의원처럼 성공한 탈북자는 극소수이고 대부분 극빈층으로 전락하다 보니 범죄 유혹에 취약하다. 돈은 없고 남한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 '대박'을 내건 사기극에도 쉽게 당하고 일부 고학력 탈북자들은 스스로 범죄 조직에 가담하는 경우가 있다. 탈북자가 국내에 오면 1인당 정착 기본금 600만원을 두 차례 나눠 주고 주거지원금으로 1300만원을 준다. 취업지원 장려금으로 2240만원을 받을 수 있지만 취업과 연관돼 받는 돈이다.

탈북자들은 대부분 교육기관인 하나원을 퇴소하면 정부가 마련해주는 임대주택에서 정착 기본금 300만원으로 남한 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상당수 탈북자는 정착 기본금마저 탈북을 도와준 '브로커'에게 넘겨줘야 한다. '낯선 땅'에서 무일푼으로 출발하는데도 북한에 남은 가족에게 생활비를 보내야 하는 탈북자도 많다.

통일부 관계자는 "탈북자 대부분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경쟁력을 갖추지 못해 정상적인 취업이 어려워 결국 범죄에 노출되고 만다. 남한 적응 교육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