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치 시장이 변하고 있다. '참치 종주국' 일본이 최고급 참다랑어(혼마구로)의 값비싼 부위를 한국에 보내고 있고, 참치 통조림 시장에선 태국과 한국이 글로벌 선두를 놓고 혈전을 벌이고 있다. 참치 횟감의 90%를 먹는 일본과 참치캔 수출 1위인 태국, 수산 강국(强國) 인도네시아 현지 조사에 나선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의 정명생·장홍석·마창모 박사를 동행 취재했다.

◇한국으로 오는 최고급 참치

지난 5일 새벽 5시30분 일본 도쿄의 즈키지 시장에서 참치 경매가 시작됐다. 전날 세계 각지에서 잡혀 비행기에 실려온 100~300㎏짜리 참치들이 바닥에 전시돼 있었다. 참치류 중에 으뜸으로 치는 참다랑어(혼마구로)가 대부분. 필리핀에서 잡힌 어른 키만 한 200㎏짜리는 1500만원, 캐나다에서 온 100㎏짜리는 1000만원에 팔렸다. 그러나 다랑어중도매협회장 반 다다오씨는 "4,5년 전부터 지중해 혼마구로와 유럽의 값싼 연어가 일본으로 유입되면서 참치회 시장이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면서 "혼마구로 가격이 떨어졌고 소비도 줄었다"고 했다.

실제 일본 국민의 참치회 소비는 경기가 호황을 누리던 1990년대를 정점으로 해마다 줄어드는 추세다. 불황이 계속되다 보니 값비싼 식품에 대한 소비가 줄어든 것으로 풀이됐다. 일본 총무성 통계에 따르면, 혼마구로 1인당 연평균 소비량은 1995년 740g이었으나 2009년 505g으로 줄었다.

지난 5일 새벽 일본 도쿄 즈키지 시장의 경매에 나온 참다랑어. 중개상들에게 육질을 보여주기 위해 꼬리 부분을 잘라 놓았다.

수년 전만 해도 혼마구로는 일본 음식문화의 자존심이었다. 일본 연근해에서 잡힌 혼마구로를 위주로 회를 만들었고, 외국산이라 하더라도 몸통에 상처가 있거나 냉동 상태가 불량한 참치는 수입하지 않았다. 일본이 워낙 고품질 혼마구로만 고집한 탓에 한국 등에서 팔리는 참치는 대부분 '하급'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런 일본이 달라졌다. 외국산 중저가(中低價) 참치를 시장에 반입하는 장면이 여러 곳에서 목격됐다.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어업협회 관계자도 "신선도에서 최고 등급만 요구했던 일본 바이어들이 최근부터 품질이 떨어지는 참치도 보내라고 한다"고 말했다.

즈키지 시장에선 일본 상류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최상품 혼마구로의 비싼 부위들을 항공편을 이용해 한국으로 보내고 있었다. 참치 도매상인 마쓰야마 지로씨는 "뱃살(오도로) 등 혼마구로 고급 부위를 한국의 호텔이나 고급 식당에 웃돈을 받고 팔고 있다. 예전엔 일본 사람들이 다 먹었고 다른 나라엔 줄 물량이 없었다"고 했다. 이젠 최고 비싼 참치회가 한국에서 소비되고 있다는 것. 하지만 "일본의 고급참치 소비 감소가 침체된 경제 탓이냐"는 물음에 참치 중개업자들은 대부분 입을 다물었다.

지난 7월 일본 수산청은 우리나라 농림수산부에 이례적인 공문을 보냈다. 한국 어선이 제주도 앞바다에서 어린 참다랑어를 그만 잡게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일본은 "30㎏ 미만의 미성숙 참치를 잡아 자원을 고갈시킨다"는 이유를 댔다. 이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주장이다. 일본은 규슈 해안에서 20㎏도 안되는 어린 참치를 잡아 상품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림부는 일본 대사관에 항의했고 '누가 참치 치어를 얼마나 잡는지 자료를 공개한 뒤에 서로 논의해보자'는 취지의 답장을 보냈다. 이후 일본은 한발 물러선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해양수산개발원 관계자는 "우리 영해에서 고등어 잡다가 올라온 참치를 어리다고 놓아주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이는 일본 참치 시장 환경이 그만큼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참치통조림 생산 1위 태국

전 세계에서 잡은 참치 640만t 가운데 회로 소비되는 비중은 15%에 불과하고 대부분 캔에 담은 가공 참치 형태로 소비된다. 참치캔은 국민소득 2000달러가 넘는 나라에서 소비되는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횟감으로 사용되는 참다랑어와 눈다랑어 등 고급 어종을 제외한 가다랑어 날개다랑어 새치류 등 나머지 어종으로 만드는 게 참치캔이다.

지난달 19일 태국 방콕에서 남서쪽으로 50㎞ 떨어진 사무사콘 지역. 타이유니온그룹과 킹피셔 등 참치 가공 공장들이 눈에 띄었다. 태국 2위 참치 기업인 시밸류의 6만㎡(약 2만평) 크기의 공장에선 막 들어온 냉동 참치를 하역하고 있었다. 해동과 해체 과정을 거친 참치들이 식용유와 함께 참치캔에 포장됐다. 5000명 근로자 중에 미얀마인이 2000명가량 됐다. 태국인 임금이 오르자 주변 국가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한 것이다. 이 회사는 하루 48만개의 참치캔을 생산해 대부분 외국에 수출하고 있다.

시밸류 공장과 100여m 떨어진 곳엔 타이유니온그룹 공장이 있었다. 중국계 찬스리 회장이 이끄는 타이유니온은 한국 동원그룹과 글로벌 1위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라이벌이다. 2000년대 중반만 해도 업계 부동의 1위는 미국의 스타키스트였다. 그러나 스타키스트가 분해돼 북미 판권과 유럽 판권이 각각 동원그룹과 타이유니온으로 넘어가면서 '쌍두마차' 시대가 도래했다. 참치캔의 최대 소비지역인 북미와 유럽을 두 회사가 나눠먹은 형국. 현재 참치캔 생산은 타이유니온이 동원을 앞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참치 가공만 했던 타이유니온은 최근 동원처럼 직접 참치잡이에 나서는 등 두 회사의 기싸움이 치열해지고 있다. 취재에 협조해 주겠다던 타이유니온 측은 당초 방침을 바꿔 공장 출입을 불허했다.

태국이 참치캔 강국이 된 데는 여러 요인이 있다. 킹피셔 원료조달부장 수파킨 탄티쿨씨는 "태국은 인도양과 태평양 사이에 있어 참치를 구하기 쉽고 부두 하역이 원활하다는 지리적 이점과 풍부한 노동력이 있다"면서 "여기에 수산물 가공 산업을 뒷받침해줄 용기(容器) 산업이 잘 발달돼 있다"고 했다. 식품을 담을 수 있는 플라스틱병과 깡통, 비닐팩, 마개 등 식품 저장 기술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태국이 참치캔 시장의 강자로 남을지는 미지수다. 최근 경제 위기로 유럽에 물건 팔기가 어려워진 데다 태국의 임금이 지속적으로 오르기 때문이다. 한국·태국 합작법인인 럭키유니온 관계자는 "참치 캔시장이 워낙 각박하기 때문에 소비자 입맛에 맞춘 신제품 개발을 소홀히 하면 어느 회사도 살아남기 어렵다. 타이유니온은 물론 동원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최근 경제 규모가 급속히 불어난 중국의 경우 날것을 좋아하지 않고 붉은 살 생선을 꺼리는 음식 문화 때문에 참치회 보급엔 한계가 있지만 캔 시장의 잠재적 수요가 큰 나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참치산업 뛰어든 중국

이런 중국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일본과 한국 등 주변국에서 참치가 비싼 가격에 팔리자 참치 산업에 투자를 늘리고 있는 것. 인도네시아 참치협회 관계자는 "과거 일본은 현지 선주에게 자본만 투자했지만 중국은 자본뿐 아니라 어선까지 동시에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인도네시아인을 '바지사장'으로 두고 사실상 중국이 사업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달 15일 인도네시아 발리섬의 베노아항에 정박 중인 20여척 어선 중엔 중국 소유로 추정되는 신형 어선 6척이 목격됐다.

중국은 중서부태평양수산위원회 등 국제기구가 참치 남획을 막기 위해 어선을 줄이자고 결의해도 이를 무시하고 참치잡이 배를 늘리고 있고, 미크로네시아와 파푸아뉴기니 등 남태평양 섬나라에 대한 무상 지원도 확대하고 있다. 동원산업 민병구 상무는 "참치를 비롯한 수산 자원이 고갈 위협에 처하는 순간이 오면 중국의 존재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서 "참치 어획을 계속 줄여나가는 일본과 매우 대조적인 모습"이라고 했다. 참치 산업에서도 '지는 일본'과 '뜨는 중국'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