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내 살아생전 원장님 진료를 다 받아 보네요.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24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동대문시장 성당 한편 16㎡(약 5평) 남짓한 '요셉방'에서 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 문정일(54) 원장의 진료를 받던 최이자(여·70)씨가 마주 앉은 문 원장을 향해 연방 고개를 숙였다. 문 원장은 "곧 좋아지실 거예요"라며 최씨를 향해 활짝 웃어 보였다. 안구 건조증과 무릎·허리 통증으로 이날 동대문시장 성당을 찾은 최씨는 여의도성모병원 무료 이동 진료소의 '10만 번째 손님'이다.

24일 서울 여의도성모병원 무료 이동 진료소가 차려진 동대문시장 성당에서 안과 진료를 받고 있는 10만번째 환자 최이자(왼쪽 사진)씨와 1940년대 초창기 이동 진료 차량(오른쪽 아래). 오른쪽 위 사진은 병원선‘바다의별’취항 때부터 의료진을 도운 서재송씨가 40여년간 간직해온 사진으로,‘바다의 별’운영을 도맡은 최분도 신부와 어린이들의 모습이 담겼다.

'10만'이란 숫자는 병원 측이 1972년 무료 이동 진료소 운영 실적(1842명)을 기록으로 남기면서부터 집계한 숫자다. 실제 무료 이동 진료의 역사는 지난 1936년 성바오로수녀회의 무료 시약소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작은 트럭을 개조한 구급차 한 대와 의사 한두 명이 서울 변두리 지역을 찾아가 간이 진료를 한 것이 시작이었다. 제대로 된 의사 하나 찾아보기 힘들던 시절 우리나라 최초의 무료 이동 진료는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에게 '생명수'와도 같았다. 6·25전쟁 당시에는 수녀와 간호사로 구성된 '가톨릭 의료 봉사단'이 전쟁터를 누비며 군인과 민간인을 보살폈고, 1958년부터 가톨릭대 의학부도 무의촌(無醫村) 진료 활동을 벌였다.

특히 1964년부터 1976년까지 12년간은 미군 함정을 개조한 '바다의 별(star of the sea)'로 의료 취약 지역이던 서해 섬마을 지역 의료 봉사에서 맹활약했다. '바다의 별'은 의사 3명, 간호사 2명, 선원 5명이 타고, 수술 시설까지 갖춘 국내 유일의 민간 병원선이었다. 크고 작은 30여개 섬마을을 돌다 보니 한번 진료를 나가면 일주일씩 걸렸다. 배 안에는 간이 수술실도 마련해 급한 환자를 돌봤다. 당시 '바다의 별'을 기억한다는 인천 옹진군 주민 서재송(80)씨는 "섬에 병원이나 약국이 하나도 없어 바다의 별이 오면 섬마을 주민 전체가 일렬로 쭉 줄을 설 만큼 인기가 좋았다"고 했다.

1972년부터 현재까지 여의도성모병원 이동 진료소의 무료 진료 혜택을 받은 환자 수(10만명)는 연평균으로만 따져 봐도 2500명에 이른다. 병원 관계자는 "공식 집계에 포함되지 않은 성바오로수녀회 무료 시약소 시절, 바다의 별 운영 시절 등을 포함하면 혜택을 받은 환자가 족히 15만명은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고 했다.

현재 의사·약사·간호사·사회사업가·자원봉사자 등 모두 13명으로 구성돼 있는 이동 진료단은 연초에 진료 신청을 받아 전국의 지역 복지관과 성당 등을 돌며 무료 진료를 하고 있다. 오랜 기간 쌓인 경험 덕분에 전문성도 상당하다. 사전 답사를 하거나 현지 보건소와 협의해 도심 외 지역에서 받기 어려운 진료 과목을 파악한 뒤 맞춤식 지원을 한다. 오지로 갈 경우엔 약제팀이 동행해 처방약도 주고, 검사 장비를 공수하기도 한다. 모든 비용은 여의도병원 자선 예산으로 충당한다.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판단되면, 병원 측이 수술비까지 지원해 준다. 그렇게 병원 측은 지난해 4500여명을 진료한 데 이어 올해도 현재까지 3000명이 넘는 환자를 진료했다.

10만 번째 환자가 나온 이날 동대문시장 성당에는 최씨 외에도 환자 200여명이 안과·내과·재활의학과 전문의들의 무료 진료를 받았다. 이날을 기념해 직접 무료 진료에 나선 문정일 병원장은 이동 진료단 식구들과 함께 조촐한 기념식을 열었다.

문 병원장은 "76년 역사를 이어온 자랑스러운 일에 자부심을 갖고, 가난하고 의지할 데 없는 환자를 잊지 말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