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몇 년 동안 전국의 재미있는 집들을 구경하러 다니면서 '백가기행'이란 책을 썼는데 기행을 해 보니까 몇 가지로 생각이 정리되었다. 새로 집을 짓는다면 온돌방은 반드시 있어야 하겠다. 돌과 불이 결합한 온돌방은 스트레스 해소에 최고이다. 스트레스로 굳어버린 경락(經絡)을 푸는 데는 뜨끈한 온돌방이다. 아궁이에서 장작 타는 냄새를 맡아보라! 그리고 아궁이 속의 장작불을 쳐다보면 근심이 녹는다. 중년 건강의 핵심은 그 집 온돌방 여부에 달려 있다.

차를 마시는 다실(茶室)도 만들고 싶다. 다실은 심플하게 만들수록 좋다. 차를 우리는 차호, 찻잔, 물 끓이는 검은색 무쇠 주전자에다가 소나무로 만든 다탁만 하나 놓으면 된다. 이 다실에 앉아서 보글보글 물을 끓이고 있으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차를 우리고 난 뒤에 차호(茶壺)에 남아 있는 찻잎의 냄새를 맡으면 깊이가 생긴다.

누마루도 있어야 한다. 더운 여름에 나무 바닥으로 된 누마루에 누워 있으면 몸에 와 닿는 촉감이 그렇게 좋다. 더위와 마룻바닥은 궁합이 맞는 것이다. 누마루는 방도 아니고 거실도 아닌 제3의 공간이라서 독특한 느낌을 준다.

집터는 그리 높지 않은 야산 자락에 잡았으면 싶다. 그래야 산에서 내려오는 땅의 기운을 받는다. 집 뒤에 대숲이나 소나무숲이 있으면 금상첨화이다. 아침에 일어나 새벽 안개 낀 숲 속을 거니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호사이다. 저녁을 좀 많이 먹어서 부대낀다 싶으면 대숲을 걷는다. 아침에는 대숲의 소쇄(瀟灑)함이 좋고, 저녁에는 소나무 향이 와 닿는다. 진주 수곡리 석가헌(夕佳軒) 뒤의 대숲길이 인상에 남는다. 경남 거창의 동계선생 고택도 집 옆으로 이어진 숲길이 수승대(搜勝臺)까지 연결되어 있다. 저녁 식사 후 산책의 즐거움이 이런 것이구나를 깨닫게 해준다.

더 욕심을 부린다면 집 앞에 물맛이 좋은 우물이 있으면 좋겠다. 물이 좋으면 병이 적다는 것 아닌가. 구례의 쌍산재(雙山齋) 앞에는 신라 말기 도선 국사가 파 놓았다는 우물이 있다. 차(茶) 대신에 이 물 한 바가지만 먹어도 정신이 상쾌해진다. 이 터를 잡은 집주인은 이 우물을 보고 집터를 잡았다고 전해진다. 이 가운데 여건이 안 되어서 한 가지만 택한다면? 대답은 온돌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