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년이 닫힌 문 앞에 앉아 열쇠 구멍을 들여다본다. 무릎 위에 놓인 두 손을 꼭 잡은 소년의 모습에서 묻어나는 것은 흥분이라기보다는 '금기(禁忌)'를 깨뜨렸다는 부끄러움.

'열쇠 구멍을 통한 엿보기'는 '관음증(觀淫症)'을 형상화하기 위해 작가들이 즐겨 쓰는 소재. 그러나 네덜란드 사진가 어윈 올라프(Olaf· 53)는 '엿보기'를 성적 호기심이 아니라, 훔쳐보는 이와 그 대상이 느끼는 '창피함(shame)'의 관계에 주목한다.

21일까지 서울 삼청동 공근혜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여는 올라프는 최신작 '열쇠 구멍(The Keyhole)' 시리즈 6점을 내놓았다. 올라프는 "우리는 자주 부끄러움을 느낀다. 낯선 사람으로 가득 찬 식당에서 미끄러져 넘어지거나, 허름한 차림으로 외출했다가 아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때 찾아드는 '부끄러움'은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에 무뎌지는 게 흥미롭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전시작 '열쇠 구멍' 시리즈는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들의 몸동작에 초점을 맞춘 작품. 등을 보이고 서서 고개를 숙이고 양손을 등 뒤에서 모아쥔 소녀, 상의를 벗은 채 고개를 외로 꼬고 관객의 눈길을 외면하는 여성 모델 등은 엿봄의 객체가 느끼는 부끄러움이다.

'열쇠 구멍'을 주제로 한 설치 작품도 나왔다. 양쪽에 문이 두 개 달린 커다란 방 형태의 작품 양쪽에서 열쇠 구멍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게 되는데, 그 안에서는 각각 성인 남성과 소년, 성인 여성과 소년이 말없이 움직임만을 통해 대화하는 영상이 이어진다. "그들의 몸짓 언어를 통해 두 사람의 관계를 짐작해보도록 하는 것이 내 의도"라는 것이 작가의 설명.

어윈 올라프의 2011년작‘열쇠구멍 1’.

올라프는 렘브란트, 베르메르 등 네덜란드 화가들처럼 빛의 효과를 이용해 깊은 인상을 남기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또 2010년 루이뷔통과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하는 등 상업 사진과 예술 사진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올라프는 "젊었을 땐 인종·동성애 등 사회문제를 소재로 한 충격적이고 도발적인 사진을 많이 찍었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이 책이나 음악, 영화 등에서는 깊은 감동을 받는데, 사진에선 왜 그런 감정을 느끼기가 힘든지 의문이 생겼다. 사람들이 깊이 빨려 들어갈 수 있는 사진을 찍기 위해 분노, 슬픔 같은 인간의 감정을 연구했다. 지금 나는 내 카메라를 '붓'이라고 생각하며 작업한다. 사진으로 감동적인 그림을 그리는 셈"이라고 했다.

(02)738-77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