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끼는 것도 예술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팝 아트(Pop Art)'의 선구자 앤디 워홀(Warhol·1928~1987)이 1960년대에 이미 내놓았다. 그는 수프 깡통 로고, 세제 박스 등 상업·대중문화의 기성 이미지를 차용·복제해 '예술'로 승화시키면서 '예술의 필수 요소=오리지널리티(Originality)'라는 오래된 공식을 깨뜨렸다.

그렇다면 '베끼기의 베끼기', 즉 '재차용과 재복제'도 예술일까? 이에 대한 답은 미국 작가 리처드 페티본(Pettibone·74)이 줄 수 있을 것 같다. 페티본은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Lichtenstein·1923 ~1997) 등 '복제'를 근간으로 하는 작품을 또다시 미니 사이즈로 베껴 그리는 작가.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은 '베낀 작품'인데도, 앤디 워홀의 '플라워'를 축소 복제한 페티본의 가로·세로 15.8㎝짜리 작품 가격은 약 3500만원. 실크 스크린으로 같은 작품을 여러 점 만든 워홀과는 달리 작품에 에디션이 없이 '딱 한 점'뿐으로 역설적 '오리지널리티'를 획득했다는 것도 페티본의 특징. 14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전시회를 갖는 그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사진 위〉앤디 워홀의 1968년작‘완두콩’(왼쪽·가로 47.9㎝, 세로 81㎝)과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1962년작‘냉장고’(가로 142.24㎝, 세로 172.72㎝). 〈사진 아래〉리처드 페티본의 2010년작 '로이 리히텐슈타인‘냉장고’(1961)와 앤디 워홀‘큰 캠벨 수프 깡통, 완두콩’(1964)'(가로 35.9㎝, 세로 23.8㎝). 왼쪽 두 이미지를 조합해 하나로 만들었다.

―'팝 아트 대가'들의 작품을 복제하는 이유는.

"1960년대 초반 미술 잡지에서 앤디 워홀의 작품들을 처음 접하고선 팝 아티스트들이 대중문화 이미지를 차용해 작업한다는 걸 알았다. 그들 작품을 재차용한다는 건 더 극단적인 행위가 되리라고 생각했다."

―처음 복제한 작품은 무엇인가.

"앤디 워홀의 1964년 작 '캠벨 수프 깡통'이다. 1962년 워홀 개인전을 관람했는데, 그 그림이 '복제해 주세요' 하고 애걸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남의 작품을 베끼는 것이 예술가로서 자존심 상하지 않나. 당신을 '창의성이 없다'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이 틀렸다고 답하겠다."

―그렇다면 '새로운 것'을 만들지 않는 당신에게 '예술'은 뭔가.

"내게 예술에 대한 정의(定義)는 없다. 예술은 스포츠가 아니다. 정치적인 것도 아니다. 내 마음속에서 나는 새로운 것들을 만들고 있다."

―왜 작품을 실물 크기로 베끼지 않고 축소하나.

"원래 미술 잡지에 인쇄된 도판 사이즈로 작업했다. 그러다 보니 그 크기 작업을 하는 게 좋아졌다."

―제작 기법이 궁금하다. 제작 기법도 원화(原畵)와 똑같나. 예를 들면 앤디 워홀의 실크 스크린 작품은 실크 스크린으로 복제한다든가.

"아까 말했듯 난 그림 자체를 복제(copy)하는 게 아니라 잡지나 책에 실린 복제화(reproduction)를 복제한다. 워홀 작품을 복제할 땐 가끔 실크 스크린을 쓰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손으로 그린다."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프랭크 스텔라, 왜 굳이 이 세 사람인가.

"그들은 (내가 복제 작업을 시작한) 60년대에 최정점에 올라 있었다. 그들은 내게 '60년대'를 의미한다."

―앞으로 복제하고 싶은 작가가 있나.

"만일 그(혹은 그녀)를 만난다면 알게 될 거다."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작품은 비싸면 수백억원도 하지만, 당신 작품 최고 경매가는 68만8000달러(약 7억6500만원)다. 그들이 부러운가.

"아니."

―한국 전시가 처음이다. 이번 전시에서 당신 작품이 로이 리히텐슈타인 작품과 함께 걸렸다. 관객들이 뭘 느끼길 바라나.

"대중에겐 '진짜(real)' 로이 리히텐슈타인과 '진짜' 페티본의 차이점을 깨닫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