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의 고전을 아우르는 세계문학 전집에도 빈틈은 있다. 아무리 잘 알려진 명작이라도 ▲번역하기가 너무 까다롭거나 ▲대중성이 약하거나 ▲저작권료가 비쌀 경우, 목록에서 빠진다.

그동안 난공불락(難攻不落)으로 여겨진 외국 문학작품이 속속 번역되고 있다.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민음사), 조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민음사), 헤르만 브로흐의 '베르길리우스의 죽음'(시공사)은 올해 나온 작품들. 안톤 체호프의 '체호프 희곡 전집'(시공사),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유문화사),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생각의나무), 단테의 '신곡'(서해문집) 등이다.

1970~80년대의 일본어 중역이거나, 비전공자 번역으로 나온 적은 전에도 있었지만, 해당 문학 전공자의 번역으로는 모두 최초다.

'잃어버린…'은 출간 100주년을 1년 앞두고, 김희영 한국외대 교수(프랑스어과)가 1부 '스완네 집 쪽으로' 1·2권을 우선 냈다. 김 교수는 파리 3대학에서 프루스트 연구의 대가인 장 미이(Milly) 교수로부터 논문 지도를 받고 프랑스 문학 박사 학위를 받은 프루스트 전공자. 전권 완역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작품이 그동안 국내 세계문학 전집 목록에 포함되지 못한 이유는 역시나 어려운 번역 때문이었다. 수천 쪽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길이, 프랑스인들이 읽기에도 숨이 차는 긴 문장, 등장인물들 숨결에서 수시로 튀어나오는 서양미술 1000년의 역사가 번역자의 발목을 잡는다. 어휘만 안다고 뚝딱 옮겨지는 작품이 아니란 얘기다.

프루스트는 공책에 끊임없이 가필하고 수정하는 스타일이었다. 공책에 여백이 부족하면 다른 종이에 써서 풀로 붙였다. '어쩌면… 또는…'으로 이어지는 긴 문장도 골칫거리. 김희영 교수는 "작품의 올바른 이해를 도와주는 1000쪽짜리 '마르셀 프루스트 사전'이 따로 있을 정도"라며 "복잡한 호칭과 길고 난해한 문장을 존중해 번역하느라 쉽지 않았다"고 했다.

10명의 남녀가 페스트를 피해 하인들을 거느리고 별장에 은신, 먹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며 주고받는 이야기들을 쓴 '데카메론'은 한국외대에서 이탈리아 문학을 전공하고 옥스퍼드대에서 문학이론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박상진 부산외대 교수(이탈리아어과)에 의해 출간됐다. 중세 말기 이탈리아어로 쓰인 데다 외설적 묘사, 모호한 주제 탓에 번역이 쉽지 않았다.

김주연 숙명여대 석좌교수는 제자인 신혜양 숙명여대 교수(독일언어문화학과)와 함께 지난 6월 '베르길리우스의 죽음'을 새로 번역했다. 신 교수는 "고대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마지막 순간을 통해 삶과 죽음, 예술과 인생의 관계를 재조명한 이 소설은 의식의 흐름 기법과 철학적 사색을 결합해 독일인들도 잘 이해 못 하는 난해한 작품"이라며 "하지만 이 작품 특유의 서정과 미학 때문에 번역하는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한형곤 한국외대 교수(이탈리아어과)가 번역한 단테의 '신곡'은 주석이 본문의 70%를 차지하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텍스트. 이전까지 일본어·영어 번역본을 중역(重譯)한 것들은 더러 있었지만 이탈리아어판을 원전으로 완역한 번역본은 지난 2005년에야 나왔다. 1978년 한 교수가 같은 작품을 번역한 적은 있으나 지금처럼 주석이 충실하지 않았고, 번역에도 아쉬움이 많았다. 한 교수는 "번역은 원작이 어느 나라 작품이든 우리나라 사람만을 위해 연구하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활동"이라며 "'신곡' 주석은 이탈리아 독자를 위해 쓰여 우리는 잘 모르기 때문에 그에 맞춰 더하고, 빼는 작업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체호프 희곡 전집'을 번역한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어노문학과) 역시 "일반 독자를 배려한 번역이 되도록 노력했다"고 했다.